Thumbnail for | 다시보는 BEST 설교 | 승리를 위한 삶의 방식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로마서 12:12~13 | by CTS BEST 설교

| 다시보는 BEST 설교 | 승리를 위한 삶의 방식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로마서 12:12~13 |

CTS BEST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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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자 여러분, 이 세상에서 우리가 신자로 살아간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믿을수록 사실 어려워져요. 예 어떻습니까 여러분들 예수를 믿으면 믿을수록 신앙생활 하는 게 쉬워집니까? 어려워집니까? 예, 쉬워진다는 분은 아직 뭘 몰라서 그러신 거고 사실 어려워요. 진리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게 어려워요. 진리의 빛이 비추어지고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삶을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려고 하면 세상의 한가운데로 들어가 보세요. 우리가 이 세상의 구조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가기에 어려운 구조들이라. 정말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긴장감이 이제 커져가죠. 여러분 우리 주변에 아직도 여전히 그 세상은 악하고 우리는 연약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지만 그 구원이 완성되기까지는 아직 우리에게는 쉽지 않은 어려운 환경을 맞게 됩니다. 많은 방해가 생겨요. 여러분 예수를 제대로 믿으려고 작정하면요 가족도 원수가 될 때가 있어요. 부부끼리도 긴장감이 생겨요. 여러분. 정말 내가 주님을 제대로 믿고 예수의 제자의 삶을 살려고 하면 주변의 사람들도 오해할 수가 있어요. 박해가 생겨요. 미움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1세기는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심했죠. 왜? 예수를 믿는 사람이 없는 예수를 믿는다는 것 자체가 미움을 당할 정도 왕따를 당할 정도가 아니요. 생명의 위협을 받을 정도로 위험한 그런 상황에 그런 상황 속에서 그런 배경 속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이 철저하게 마이너리티 소수의 사람들이 있는 그 시대 속에서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믿음을 지키고 승리한다는 것은 간단한 얘기가 아니에요. 자 오늘 우리가 오늘 이 12절의 말씀 한 구절을만 우리가 오늘 살펴보려고 하는데 이 짧은 구절이지만 우리의 신앙의 길이 쉽지 않지만 승리의 어떤 로드맵 어떻게 하면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를 아주 한 구절에 한 축성 있게 바울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메시지입니다. 세 가지 메시지 키워드가 있는데 하나는 소망이라는 단어, 두 번째는 인내라고 하는 단어, 세 번째는 기도라고 하는 단어. 이 세 가지 키워드를 우리가 잘 잡고 우리가 간다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승리의 삶을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첫 번째는 소망 중에 즐거워한다는 것. 소망 중에 즐거워한다.

[2:59]여러분 소망 중에 즐거워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확 금방 와닿지 않는다는 겁니다. 여러분 소망이라고 하는 것은 현실에서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에 대한 얘기입니다. 현실에 대해서 현실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게 아니라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에 관한 것을 가지고 즐거워한다는 겁니다. 이 말은 이 말 안에는 뭐가 있느냐 하면 소망 중에 즐거워한다는 말은 현실이 쉽지 않다는 거예요. 현실을 가지고 즐거워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거. 현실은 굉장히 어렵다는 겁니다. 현실은 굉장히 혹독하고 시련과 고난이 오는 환경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만약 신자가 현실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당장 우리의 신앙은 딜레마에 빠집니다. 신자의 목표는 현실이 아니로 장래에 이루어질 일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의 삶의 보상은 현실이 아니라 미래에 주어집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주님을 위해서 희생의 삶을 산다 할지라도 이 땅에서 보상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미래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만약에 오늘 내가 수고하고 헌신하고 대가를 지불하고 난 다음에 현실의 삶에서 뭔가 보상을 기대한다면 신앙은 딜레마에 빠집니다. 현실이 아니라 미래예요. 물론 현실에 주어지는 어떤 보상이 없는 건 아니지만 미래에 주어질 보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지어진 진전은 미래에 주어진다는 거예요. 여러분 믿음이 요구되어지는 이유가 뭘까요? 현실이 아니라 미래의 승부를 거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믿음이 왜 필요한 건가? 미래를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막연한 기대가 아니죠. 성경 전체가 말씀하는 요지는 장래에 대한 약속들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우리는 구약을 올드 테스트먼트 그리고 신약을 뉴 테스트먼트. 신약 구약 하는 게 뭘까요, 여러분? 약속들이라는 겁니다. 성경은 약속들에 관한 책입니다. 물론 과거의 히스토리 역사를 기록해 놓았지만 과거의 역사를 기록한 이유도 결국은 그 과거에 관해서 묵상하고 추억하는 것으로 종교를 끝나는 게 아니고 그 과거에 행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결국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느냐 하면 미래 미래. 미래의 약속을 보장해 주기 위해서 과거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의 기독교의 신앙의 핵심은 언제나 과거에 있는 것도 아니고 현재에 있는 게 아니고 우리의 모든 초점은 미래에 있다는 미래에. 여러분 성경을 읽을 때 우리의 관심이 어디 있나? 미래에 대한 소망해야 된다는 겁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믿음의 사람들 보면 하나같이 모두가 환란과 시련을 통과했는데 그들이 그 모든 힘든 현실을 뚫고 나갈 수 있게 만드는 힘은 뭐냐? 미래에 선명하게 미래에 약속된 그 나라를 기대했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1절에 뭐라고 말합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 지금은 보이지 않아요. 그리고 지금은 바라지만 그러나 언젠가는 이루어질 실상. 그 실상이 히브리서 11장에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말하는 겁니다. 여러분 믿음이 약화되면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 하면 현실에 자꾸 초점을 맞추는 거예요. 현실에 매력적인 현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수많은 것들을 약속하고 있죠. 달콤한 유혹들 우리에게 매우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행복을 약속해 주는 이 땅의 어떤 즐거움과 행복을 약속해 주는 것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몰라요. 여러분 뭐 TV를 보거나 우리 주변에 많은 얘기들을 들어보세요. 우리를 굉장히 행복한 영생의 삶으로 이끌어 줄 것처럼 그렇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세상에 남발하는 그 약속들은 헛된 약속들이죠. 이루어지지 않을 약속들이죠. 그래서 결국은 그 약속들이 현실적으로는 우리에게 행복을 줄 것처럼 여겨지지만 그대로 계속 따라가면 결국은 우리를 더욱더 불행하게 만드는 노예적 삶을 살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귀가 하는 일이 뭐냐면 속이는 거예요. 마귀가 하는 일은 속이는 거예요. 사탄은 속이는 데 명수입니다. 거짓되고 헛된 세상의 약속들의 돋보기를 갖다 대고 날마다 카메라를 갖다 대고 클로즈업 시킨다는 겁니다. 세상의 약속들의 군침이 돌게 하고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사탄은 어떻게 하든지 우리의 현실에 눈을 고정하게 만들고 미래를 바라보지 못하도록 몰아붙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세상이 얼마나 자극적입니까? 한 눈 팔기가 굉장히 쉬워요. 여러분 마귀가 마귀에게 틈을 주면 금방 다가와서 우리의 시선을 다른 쪽으로 방향을 바꿔 버리고 맙니다. 믿음이 하는 일은 현실에 발을 딛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미래를 향하게 합니다. 믿음은 미래를 위하여 필요한 것이죠. 미래는 아직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입니다. 우린 오직 믿음으로만 미래를 바라볼 수가 있는 것이죠. 미래의 소망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은 쓸데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강해지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미래가 아득한 것이 아니라 내 손에 다음 것 처음 현실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눈앞에 현실보다 미래의 소망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것이 믿음이에요. 여러분 소망 중에 즐거워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오늘 우리가 우리 가슴에 와 닿는 분들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현실에 맞은 고난의 무게보다 미래의 소망이 더 깊이 와닿을 때 우리는 이 땅에서 절망하지 않고 승리의 그 그를 길을 걸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자에게 즐거움은 현재가 아니라 장래의 소망입니다. 지금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면 정말 소망이 없는 인생이에요.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18절에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그랬어요. 여러분 영적 시력이죠, 이게. 믿음으로 영적인 시력이 생기게 되니까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보이는 것은 보이는 게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한 것이고 그게 실제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7절에 보니까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라 그랬어요.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지금 받는 고난이 대단히 큰 것 같다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의 영광의 중한 것과 비교하면 아주 작은 것이고 그것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중 영광의 그 중한 우리에게 주어질 영원한 그 영광이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볼 때 오늘 우리의 현실에 그 고난을 우리가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신앙은 바라봄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미래에 장래의 소망을 바라보는 것에서 빗나가면 눈앞에 현실이 현실이 우리에게 다가오게 되고 그 현실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늘 소망에 눈이 열린 자로 살아가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 18절에 이런 말씀하죠.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 기가 막힌 말씀하셨어요.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 컴페어 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비교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너무너무 큰 겁니다. 교부 크리소스톰이 그런 얘기를 했죠.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고난을 다 합쳐도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에 단 1초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하늘의 영광은 크고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든 초점이 어디에 놓여져야 된다고요? 미래에 이루어질 소망이라는 거예요.

[11:12]여러분 우리가 즐거워하는 것을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우리가 오늘날 즐거워하고 있는 것은 현실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 굉장히 힘든 아주 그런 작은 월세방에서 좁은 방에서 힘들게 살아도 언젠가 이 적금이 적금을 들어서 타는 날 이 전세집에 간다는 전세집에서 어느 날 내 집을 마련한다는 그 미래의 소망이 있을 때 오늘 현실을 견뎌내는 힘이 생기잖아요. 군대 간 사람들이 여러분 마지막 제대하는 그 날이 오니까 막 땀을 흘리고 힘을 힘들어 일한답니다. 병원에서 있는 환자가 곧 언젠가 퇴원할 날이 기다릴 때 그 미래적인 일이지만 그 미래적인 일이 오늘을 내가 견디게 만들고 오늘의 삶의 환력을 주는 겁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현실을 가만히 바라보면 오늘 지금 일어난 현실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게 아니라 미래에 관한 것들을 가지고 우리가 즐거워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근데 오늘 바울은 우리의 미래에 펼쳐질 그 영광 회복 구원의 완성 우리를 영원한 천국에 도달하게 하실 그 영광에 초점을 맞추는 것. 그 안에서 즐거워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의 핵심이라고 하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두 번째는 뭐라고 말합니까? 환란 중에 참으며라고 말합니다. 신자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오늘 환란 중에 참으며라고 하는 이 말은 무슨 말씀입니까? 믿음의 사람들의 현실에서 너무도 당연하게 찾아오는 것이 환란이라는 겁니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너무도 당연한 게 환란이에요. 시련이에요. 고통이에요.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으면 시험이 없고 고통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어요. 만약에 여러분 그런 생각을 예수 믿으면 형통할 것이다라고 하는 방정식만 갖고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어떤 어려움이 오면 시험에 들 수밖에 없습니다. 환난을 당하면 이상하게 여기는 분들이 있어요.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환난과 시련이 당연하게 찾아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 12절로 13절에 보니까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그랬어요. 여러분 시련이 닥칠 때 시련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매우 중요합니다. 환란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긍정적으로 맞이할 수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4장 22절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그랬어요. 여러분 신자에게 환란은 일종의 트레이드마크입니다. 신앙의 길에서 당연히 찾아오는 삶의 일부로 보는 게 좋아요. 여러분 베드로는 시련을 받을 때에 즐거워하라고 말씀합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죠. 시련 자체를 즐거워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박해를 받을 때 어떻게 즐거워할 수가 있겠습니까? 근데 오늘 여기에서 그 시련이 찾아올 때 즐거워하라는 이 말은 그리스도로 인해서 받는 박해로 인하여 주어질 미래의 결과로 인하여 즐거워하라는 거예요. 그러므로 환란 중에 참는 것은 바로 앞에 소망 중에 즐거워한다는 말과 지금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장래에 나타날 소망이 없이 무조건 참는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받을 때 받는 고난이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신자에게 영광이요 특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믿음 때문에 시험을 당하는 일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초대 교회와 같은 그런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환란과 핍박을 받는 사람들은 그렇게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강도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가 믿음의 삶을 걸어가려고 하면 시련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예수를 믿는 신자이기 때문에 때로는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손해를 보고 양보를 해야 할 때가 있어요. 순간적인 이익보다 신앙의 자존심을 지켜야 할 때가 있습니다. 술자리 동참하지 못함으로 상사의 눈에 나가서 진급해서 누락되는 경우들도 있을 거예요. 투명하게 사업을 운영하다가 세금 폭탄을 맞은 분들도 계세요. 신앙을 가진 남자와 결혼을 하려고 하다가 나이가 들어 이제는 청춘이 사라지고 부모로부터 환란과 핍박 가운데 있는 자매들도 있어요. 좋은 명문 학교를 나와 전도 유망한 그런 사람이 갑자기 선교사로 가려고 할 때 가까운 가족들로부터 어려움을 겪는 이야기들을 우리가 많이 듣습니다. 단기 선교를 다니는 기간인데 어떤 사람은 단기 선교를 갔다 오니까 직장에 가니까 내 책상이 없어져 버렸어요. 선교지에 가보니까 말이죠. 이번에도 선교지에 가서 많은 선교를 오랫동안 하신 선교사님들을 만나 교제를 하는데요. 모두가 선교의 그 10여 년 동안 20년 가까이 사역하는 가운데 말로 다 할 수 없는 아픔과 그런 시련을 겪은 얘기들을 들었어요. 너무 마음이 짜하더라고요. 오늘도 물선 나라 물 쓰고 났은 그런 곳에 가서 정말 힘든 열악한 그런 환경 속에서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복음을 전하는 건가. 저는 며칠 있는데도 내 영혼이 공고했어요. 끊임없이 먼지가 풀풀 나는 뭐 이게 이게 도로가 도로가 아니에요. 도로가 도로가 아니에요. 그냥 가만히 있으면 온도가 막 올라가는 거예요. 올라가는 거예요. 캄보디아도 요즘은 우기라서 좀 시원하다 그러는데 낮은 45도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니까 말라리아에 걸려가지고 말라리아로 죽음을 통과하는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땅에 왔는데 나는 주만을 위해 사는데 말라리아에 걸려서 죽음의 위기. 여러분 41도를 유지하면서 끊임없이 낮과 밤이 없이 41도 40도를 오르내리는 그 열 열로 그냥 밤잠을 설쳐요. 죽음의 위기에 가는 모든 내장의 기관이 막 그냥 흔들리는 그리고 그 땅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그 아이들이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 피부가 다른 그 환경 속에서 아이들이 그 사춘기를 겪으며 일어나는 수 없는 애환들. 죽음의 통로를 막 건너는 수 없는 그 어려움들 속에서 나는 복음을 위하여 주를 위하여 살고자 하는데 왜 어찌하여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시련을 하나님이 허락하십니까? 의문스러운 일들이 일어나요. 내가 주를 위하여 살면 주님이 나이스하게 내 삶의 모든 것들을 좀 풀어주시면 얼마나 좋겠어요? 근데 여러분 기독교는 무통의 종교 고통이 없는 종교가 아니에요. 고통이 있어요. 시련이 있어요.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도 여전히 우리의 삶에 그 어려움은 끝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18:23]근데 여러분 분명한 것은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특징이 하나 있어요.

[18:33]고통을 나 혼자 겪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통을 겪을 때 사람들이 느끼는 가장 큰 힘든 것은 뭐냐? 고립감이에요. 그 고통의 한가운데 내가 빠져 있을 때 나만 이 고통을 겪고 있다라고 하는 그래서 뭔가 내가 거절받았다는 거. 그리고 고립감. 모든 것으로부터 외토리가 된 듯한 느낌, 거절당한 느낌.

[19:07]그때 의문에 휩싸이죠. 소망이 꺾여버려요. 그 죽음을 통과할 때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몰라요. 죽음이 오락가락할 때. 이번에 만난 그 선교사님도 그런 고백을 해요. 정말 죽음을 통과하는 그 고통이 일어날 때 이제 죽음이 임박했던 그 상황 속에서 도대체 하나님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십니까? 그러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싶은 생각까지 드는 위험한 순간이 들어가요. 영혼의 깊고 어두운 밤을 통과하는 겁니다. 근데 여러분 성경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우리의 고통이 우리의 고통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시편 그 아름다운 시그에 보면 여러분 시편 23편 4절에 뭐라고 말씀합니까?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그랬습니다.

[20:02]여러분 시편 23편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니 실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얼마나 아름다운 시기가 많습니까? 그런데 섬찟한 단어가 하나 끼어 있잖아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우리의 삶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할 때가 있어요. 그것을 거부할 수는 없다는 거죠. 그 사망이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는 그 환경에 찾아올 때 우리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고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거예요. 여러분 기독교의 가장 상징적인 십자가가 주는 메시지가 뭡니까? 하나님인 그 하나님이신 그분이 십자가를 지셨다는 말은 뭘까요? 여러분 그 하나님은 그 하나님 당신이 고통의 한 가운데 계신다는 얘기예요.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시고 경험하신 분이시고 이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시는 그분이 우리의 고통의 한가운데 찾아오시는 분이시라는 거죠. 그러므로 여러분 고통 가운데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은 우리를 고통의 한가운데서 내버려두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그 고통이 우리를 집어 삼키도록 내버려두시는가 하시 아니라 그 고통을 통하여 우리를 승리케 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환란 중에 참으라라고 하는 이 말씀 속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환란이 언젠가는 끝이 나는 날이 올 것이라는 거예요. 우리의 시련과 고통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라 그런 겁니다. 시련과 고통 속에 있을 때는 그것이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보이지만 환란의 날, 시련의 날, 고통의 날은 정해져 있어요. 반드시 끝이 나는 날이 올 것이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여러분 내가 당한 고난은 지나가고 끝이 오기 때문에 참아야 하는 것입니다. 환란이 닥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어요. 참는 것. 왜 참으라고 할까요? 참는 것 그 외에는 다른 어떤 길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해줄 수 있는 일이 그때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참아야 할 때는 참는 것밖에 없고 그 참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은 또 다른 일을 행하시고 그 참는 자에게만이 주시는 위대한 상급이 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욥기서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뭡니까? 그 욥의 그 고난과 환란을 통과하면서 그를 점금같이 그의 믿음을 빚으시고 내가 전에는 귀로만 들었지만 이제는 눈으로 본다. 직접 주님을 하나님을 알게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며 그의 인생의 반전의 수토리를 하나님이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만히 보면 다 같이 고난을 당하고 고난에 대한 반응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고난을 통하여 믿음이 더 깊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을 떠나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똑같은 고난인데도 어떤 사람은 고난을 통하여 더 믿음이 깊어지고 더 정금 같고 더 정결해지고 더 하나님을 가까이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그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떠나버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믿음의 사건의 문제가 아니라 그 고난이 문제가 아니라 고난에 대한 우리의 태도 우리의 반응이에요. 고난을 통하여 우리의 삶이 더욱더 정결해지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고 우리의 믿음이 더욱더 커진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진짜의 믿음이라는 거죠. 그러나 환란과 시련을 통하여 하나님을 떠나버린다면 그 믿음은 있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가짜였어요. 진짜가 아니었어요. 믿음의 진위를 확인하는 것은 시련을 통과해야만 검증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인들 가운데서 여러분들이 얼마나 많은 고난들을 겪고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환란과 풍파를 통과하면서 이 자리까지 오셨습니까? 그러나 수 없는 사건과 위기들 앞에서도 더욱더 하나님께 나아가고 더욱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더욱더 점금 같아지면서 하나님 앞에 내 오늘의 내가 있다면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검증된 믿음이요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 진짜라고 하는 사실을 그런 사건들을 통하여 경험하면서 우리는 그 믿음을 가지고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짜 믿음은 시련이 올수록 소망이 더 깊어집니다. 우리에게 소망은 환란이 끝나는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끝이 있다는 거예요. 해피 엔딩이 반드시 있다는 거죠.

[24:43]여러분 우리의 삶의 결국은 우리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 무조건 참으라고 하시지 않아요. 참으라고 하시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인내의 한계를 알고 계세요. 그래서 하나님은 고통의 무게를 조절하세요. 그냥 동 똑같은 고통의 무게로 모든 사람에게 주어져서 참을 사람 이길 사람 이기고 죽을 사람 죽으라고 하는 하나님이 아니세요.

[25:13]모든 사람에게 적절한 고통의 무게를 주신다 이길 만큼 이겨낼 만큼 여러분 참으시면 참을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이세요. 무조건 고통을 떠미시는 하나님이 아니세요. 내가 감당할 만한 시험을 주시는 하나님이세요. 그리고 이길 만한 힘을 주세요. 뿐만 아니라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성경의 수많은 스토리를 보면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얼마나 성경의 곳곳에 우리가 발견하는지 몰라요. 여러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이 말은 하나님이 매듭을 잘 지으시는 분. 해피 엔딩으로 매듭을 확실하게 지으시는 하나님이에요. 여러분 하나님은 끝맺음을 아주 잘하시는 분이에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때로는 우리의 삶이 끝이 났다고 생각할 그때에 여러분 낙심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의 끝은 우리가 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악인의 손에 우리 인생의 결론이 나지 않아요. 우리 하나님은 악인의 손에 우리의 인생을 맡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당신이 지고 계시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 7절에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나의 달려갈 길을 어떻게 해요? 다 마치고. 이게 뭘까요? 환란 가운데 참아냈다는 겁니다. 여러분 참는다 인내는 뭘까요? 인내는 99%만 인내하면 인내가 아닙니다. 100%예요. 마지막까지 끝까지 하나님이 끝이라고 말씀하는 그때까지 참을 때 그 인내는 완성될 것이고 그 인내로 인하여 그 믿음은 경고케 될 것이고 그 경고한 믿음은 미래의 소망을 붙잡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은 참는 거예요. 믿음은 보라 빛. 아주 핑크빛. 아주 아주 내가 생각하기 나이스한 좋은 것들만 일어나는 삶이 아니에요. 믿음은 구준 일들이 수없이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참아내는 게 믿음이에요. 참는 게 믿음이에요. 참아낼 수 있는 게 믿음이에요. 믿음은 견디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끝까지 견디는 것이 믿음이에요. 그런 믿음이 여러분들 안에 있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느 때보다도 기도를 더 많이 보충해야 될 때가 바로 여름이라고 생각해요.

[28:19]저는 여러분 휴가를 보내고 온 성도들 가운데 어떤 분들은 완전히 밑바닥을 헤매고 그냥 오는 분들을 많이 보았어요. 갈 때는 천사처럼 떠났는데 어느 날 돌아올 때는 지옥에서 출장 나온 사람같이

[28:38]여러분 지리산 계곡도 좋고 곳곳에도 좋지만 여러분 이 여름에 아버지의 품 안에 깊이 안기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기를 바라요. 깊은 기도예요, 여러분. 깊은 기도. 살짝 당금질 하는 그런 기도가 안 돼요. 여러분 깊은 기도. 그때 영혼의 질이 높아지고 그 영혼의 질이 높아질 때 우리의 신앙의 힘이 실려서 외적인 환경을 이겨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돌파력이 생기는 거예요. 기도를 통하여. 그때 우리는 현실에 빠져 절망하지 않고 소망 중에 즐거워하게 되고 그리고 우리에게 찾아오는 어떤 시련과 환란도 이겨내게 만드는 힘이 그 영적인 그 기도 안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가 약해지면 믿음이 실날 같이 가늘어져요. 실날 같이 그 믿음이 가늘어지기 때문에 현실에 파묻혀 끌려가 상황을 이길 수가 없어요.

[29:43]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에 기도를 하되 항상 힘쓰는 여러분들 되셔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승리를

[39:58]경험하는 승리하는 승리를 선포하는 하나님의 백성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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