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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현 목사] 하나님 나라는 누가 들어가는가? | 막 10:13-16 | CGNTV 말씀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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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자 우리가 이 상품이 있고 또 작품이 있죠. 상품은 값을 매길 수 있는 겁니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거죠. 작품은 공장에서 그렇게 대량 생산하는 것들이 아니죠. 작가의 이름에 또 명예가 있습니다. 또 걸작품 하면 좀 다르죠. 걸작품 하면 값이 없습니다. 값을 값이 없는 이유는 값을 매길 수 없는 거죠. 이 결국은 이제 값이냐? 프라이스 아니면 밸류 가치냐? 그렇습니다. 그 우리 눈으로 보는 것은 값을 매길 수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근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값을 매길 수 없어요. 사랑 값을 매길 수가 없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그 사랑을 값으로 매기면 얼마가 될까요? 아 값이 안 나옵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마어마한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이죠. 그 무엇을 가치 있게 보느냐? 가치 있는 것을 값으로 따지는 것은 굉장히 천박한 일이죠. 가치를 모르면 어 귀중 여기지 못합니다. 그리고 존중하지 않죠. 우리가 가치를 느낄 때 발견할 때 아 이게 그런 가치가 있었어? 그러면서 우리는 존 존중하게 되죠. 여러분 예배라는 말도 뭔지 아십니까? 예배라는 이 월십이라는 우리 영어로 월십이라고 그럽니다. 근데 월스라는 가치 있다. 그리고 십이라는 단어 끝입니다. 그 월십이라는 이 말은 합성하는데 가치를 인정한다는 그런 뜻입니다. 가치를 인정하다. 그럼 예배는 어 무엇에 대한 가치입니까? 하나님에 대한 가치. 그 하나님이 이 세상의 모든 가치보다 뛰어난 최고의 가치가 되신다. 그것을 인정하는 그것을 발견한 사람들이 예배하는 것이죠. 이 가치를 하나님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오늘 또 모든 걸 다 포기해서라도 그 가치를 발견해서 그 이름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까지도 바칠 수 있는 거죠. 왜냐하면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자 오늘 이 마가복음도 결국은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에 눈으로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근데 그 나라를 보는 거죠. 그 하나님의 가치를 보는데 그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눈으로 판단할 수 없는 그런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기준 또 관점이 다른 것입니다. 이 세상의 관점과. 자 오늘 이 본문에 보면 어떤 사람이 그 어린 아이를 아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근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막아 버려요. 오지 못하게. 그 이유가 있었겠죠. 아이들이 예수님에게 오지 못하도록 막았던 이유는 무슨 뭐 예수님이 바쁘시기도 하고 근데 제자들의 의식 속에는 예수님이 얼마나 큰 일을 하셔야 되는 분인데 이 꼬마들이 이렇게 몰려와 지금 너희들하고 놀 시간이 없어. 예수님은 굉장히 크신 일을 하시는 분인데 이 아이들이 오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 거기에는 무슨 생각이 있느냐면 아이들을 효용 가치가 없다는 거죠. 돈이 안 된다. 뭐 이런 표현입니다. 자 여러분이 그 모습 보고 그 예수님에게로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데 그 제자들이 막으시는 모습을 예수님이 보고 오늘 보니까 본문이 노하셨다 그랬습니다. 근데 이 본문에 원어로 들여다보면 이 노하시다는 게 굉장히 경로입니다. 경로. 누구에게요? 제자들에게 경로를 하시는 겁니다. 왜 경로하셨는가 하면 이 제자들의 모습은 그 시대의 문화의 사람들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여러분 이 헬라의 문 문화에서는 여성들이나 아이들을 무시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그 오병이의 사건에도 여자와 아이를 숫자에 빼 버려요. 그 여자들은 이 정인의 채택도 안 되고 그 아이들을 굉장히 무시하는 이런 문화입니다. 우리 한국도 그런 문화가 좀 많이 있었죠. 그리고 아이들을 무시하고 또 딸을 낳으면 딸을 무시하고 이런 어떤 이제 무시하는 문화들이 있었습니다. 이게 뭐냐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시대의 문화 특히 바리새인들. 바리새인들은 굉장히 이렇게 구별하는 문화예요. 그런 모습을 제자들이 보이고 있는 것에 예수님의 생각과 예수님의 관점을 닮지 않고 오히려 세상의 문화를 닮아 있는 제자들의 모습에 매우 실망하시고 분노하신 겁니다. 자 오늘 이 제자들과 달리 예수님이 어린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셨는가? 오늘 14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노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걸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오히려 이 어린 아이들이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아이들의 것이다. 자 여러분 여기 이 말은 이런 자의 것이라는 이 말은 그 어린 아이들. 어떻게 보면 보잘 것 없는 소홀이 취급을 당하는 연약한 존재들. 근데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자들의 것이다. 여러분 이게 하나님의 나라의 개념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작은 자를 작게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어떤 존재도 무시당하지 않는다. 이게 이제 세상에 다른과 다른 개념이죠. 근데 제자들이 이 하나님의 나라의 눈이 열리지 않았고 아이들의 가치를 보지 못한 것이죠. 특별히 우리가 앞부분에도 살펴보았는데 마가복음 9장 42절을 보면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매어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그랬습니다. 이것도 마찬가지. 나를 믿는 작은 자 중 한 사람이라도 실족하게 하면 그 죄가 작지 않다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의 나라의 관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관점. 하나님의 백성들에 가져야 될 관점이죠. 자 그러면 오늘 여기 14절과 15절에 14절에서 천국은 이와 같은 자들의 것이다. 15절에서도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아니하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자 그러면 어린아이들이 다 천국에 간다는 말인가? 이런 질문을 할 수가 있습니다. 자 오늘 이 본문은 그런 뜻은 아닙니다. 여러분 어린아이들도 어 죄를 지어요. 어린아이들이 뭐 어떤 부모들은 아 우리 애는 너무 순진하고 너무 착하고 그렇다고 그래요. 그 부모가 복이에요 그런 거예요. 사실은 순진한 부분이 있지만 영악하죠. 영악하죠. 내 보니까 한 두 살 정도만 되도요 아 요즘은 자꾸 이 이게 이게 또 일찍이 이렇게 깨는 거 같아요 옛날보다. 옛날에는 한 네 살 되야 어 했는데 요즘 한 두 살만 되도 영악해요 보니까. 그리고 뭐 동생 뭐 부모 앞에서서도 아주 복 복 동생과의 관계에서도 상당히 그 부모를 속이면서 아주 이렇게 교묘하게 죄를 짓는 아이들이에요. 그 성경은 이 인간은 하여튼 태어날 때부터 우리 시편 51편에도 죄악 중에 잉태되었다 그러죠. 그 본질상 어 에베소서 2장의 말씀에 의하면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는 거. 어 오직 예수의 피로만 죄 용서함을 받고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어요. 그 아이도 예수의 피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이이기 때문에 구원 받는다는 그 얘기는 아닙니다. 그러면 오늘 왜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가? 마치 이런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것은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특성 때문입니다. 오늘 이 두 가지만 우리가 좀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무엇 때문에 그러면 어린아이와 같은 자가 이런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인가? 첫 번째는 어린아이들의 의존성입니다. 의존성. 그 아이들은 어때요? 출중이 돌봄을 받아야 합니다. 그죠? 돌봄을 받아야 돼요. 부모에게 의지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 그 아이들은 늘 부모를 찾죠. 잠시라도 없으면 어릴수록 부모를 찾습니다. 그러니까 어 부모의 도움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아이는 의존적인 태도를 늘 보이고 있습니다. 자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제 어른이다 얘기할 때 어른 또 다르게 하면 어덜트 성인이다라는 말도 우리가 오해해서는 안 되는데요. 성인이라고 하는 말은 법적인 나이로 뭐 어떻게 따질 수는 있지만 그 성인이라는 그 말이 누구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는 존재가 된 건 아니에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인간은 연약합니다. 예 왜 우리가 여러분 교만해서는 안 되는가 하면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요. 이 연약하다는 그 말에 안에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거. 한계. 언제나 뭐 육체적으로도 그렇고 정신적으로도 그렇고 영적으로도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복음 15장에 나온 탕자를 보면 탕자가 아버지를 떠나서 아버지 유산을 받아서 떠나죠. 여기는 독립성을 가진 모습을 보입니다. 나는 아버지의 도움 없이 나 홀로 살겠습니다. 예 그래서 떠난 거예요. 아버지 품을. 근데 누가복음 15장에서 나오는 굉장히 중요한 모습은 뭘까요 여러분? 그 아들이 아버지를 떠나고 잘 살 수 있었느냐? 얼마 못 가서 완전히 밑바닥으로 가는 거죠. 그래서 돌이켜 아버지에게로 돌아옵니다. 유명한 탕자의 비유잖아요. 돌아온 탕자. 돌탕이라고 하는 이 유명한 노래. 이 스토리가 아버지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인간의 실존을 보여주는 겁니다. 인간의 홀로 잘 살 수 있을 것처럼 똑똑하고 잘 나고 자기 능력을 의지하고 그렇지만 결국은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는 거예요. 아버지 곁에 살아야 될 존재라는 것을 가리켜 주는 거. 여러분 구약에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세술이 능하고 머리가 좋고 해 머리 회전이 대단하잖아요. 자기의 능력과 재주로 열심히 살지만 나중에는 에서 형을 만나는 시점에서 그의 인생의 모든 게 송두리째 날아갈 수밖에 없는 위기를 맞습니다. 그러면서 약복 나로에서 홀로 있다가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을 하고 가 가려고 하니까 붙잡죠. 그리고 환도뼈가 처져서 위골이 됐는데도 안 놓습니다. 나를 축복하지 않으면 난 간 당신을 보내줄 수가 없습니다. 그 하나님이라는 걸 직감한 겁니다. 그렇게 독립적으로 살려고 했던 야곱이지만 결국은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 버니엘이라고 하는 곳에서 그의 이름이 바뀌는 겁니다. 야곱에게서 이스라엘로. 그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이름 자체가 어떤 면 그 안에는 인간의 연약과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그래서 하나님이 네가 이겼다고 했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그를 이겼다고 선포해 주신 이 전환점인 것이죠. 여러분 어떤 사람은 무엇인가 가득 차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것으로 예 어떤 필요도 느끼지 않고 또 어떤 사람의 도움도 필요 없다는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 것을 우리는 자존심이죠. 자존심. 자존심 그렇죠. 그래서 우리는 이 자존심이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일평생이 자존심을 붙들고 살아가야 돼. 근데 여러분 인간이 자신의 우월함 때로는 능력을 의지하고 그것을 자랑하면 할수록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는 거요. 죄가 무엇입니까? 죄는 하나님과 분리되어 살아가고자 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독립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태도. 그게 죄예요. 그래서 이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이 말은 철저히 하나님에게 의존된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는 거.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거. 여러분 죄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기력합니까? 죄를 아무리 안 지어려고 애를 써도 끊임없이 죄를 짓고 우리 스스로는 우리가 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그런 연약한 존재란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나이가 지금 몇이든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철저히 자기의 무력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다라고 하는 이 고백을 날마다 하는 거. 이게 바로 수동태예요. 수동태. 수동태의 모습입니다. 철저히 의존적인 도움을 받아야 사나는. 그 그 구원이 우리의 힘으로는 구원받을 길이 없음을 오늘 또 우리 세례 문답하면서 마찬가지로 그 고백을 하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큰소리 쳐서는 안 돼요 여러분. 교하는 굉장히 무서운 겁니다. 성경에 우리가 교만 인간의 교만을 얼마나 하나님이 맹렬하게 미워하시는지 몰라요. 그 왜냐하면 그게 스스로 망하는 길이기 때문에요. 똑똑한 척 하면 그것이 결국은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리는 모습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언제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자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고 우리는 유한한 존재요. 비교 불가능해요.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날마다 인정하고 하나님의 능하신 손에 우리의 삶을 내어 맡기기 위해서는 낮아져야 된 어린아이처럼. 여러분 우리의 모든 어떤 것도 우리의 힘으로가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의지하고 살기 위해서는 항상 납작 엎드려야 돼요. 항상 자기 자신을 연약함을 무능을 인정해야 돼요. 그리고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라는 이 고백을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임한다는 거.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 이거 의지하는 거예요. 의지하는 거요. 내가 내 힘으로 살 수 있다고 큰 소리 치지 말라는 거예요. 언제나 하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능을 능하신 손길을 의지하는 거요. 자 이것이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에요. 하나님 나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모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합니다. 자 두 번째는 이 어린아이와 같다는 말은 두 번째 특성은 수용성이에요. 수용성. 어린아이들의 특징은 뭘까요 여러분 잘 받아드립니다. 자 어 어른들보다 어린아이들이 참 진리에 대한 수용성이 높습니다. 말씀을 전하면요 그대로 빨아 당깁니다. 백지어 같아. 백지. 백지 상태. 자 어린아이들은 단순하죠. 생각이 복잡하지 않습니다. 근데 어른들은 생각이 참 복잡한 거예요. 예 머리가 굉장히 복잡해요. 뭐가 많이 들어와 있어요. 가시나무 노래에서처럼 내 안에 내가 너무도 많아 그래요. 내가 너무 많은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받아들이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 되는 거야. 왜? 내 안에 어떤 관점이 생겨 있기 때문에. 자기 안에 어떤 세계관이 경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어떤 사람은 상처를 많이 받고 살아온 사람은 그 상처의 경험이 내 내면 세계의 어떤 관점을 만들어 낸 거예요. 그죠? 여러분 예를 들면 내가 어떤 사람에게 사기를 당했다. 이 사기를 당한 그 경험이 있으면 그기에 대한 상처로 인한 어떤 관점이 생긴 거죠.

[17:21]선입견이라는 게 생기는 거예요. 선입견. 자기 생각에 몰두해 있는 거예요. 몰두해 있는 거. 지난 주간에 우리 교회 통일 선교 주관 강사로부터 들었던 얘기예요. 중국 쪽에서 탈북민 선교를 하시는 선교사님인데 탈북민들에게 성경을 이제 막 가르치니까 아 이 탈북민들이 처음에는 왕강하게 거부를 하는 거예요. 그리고 못 믿겠다는 거. 못 믿겠다는 거. 그러면서 못 믿겠다는 정도가 아니라 화를 내는 거예요. 당신이 성경을 내 내용 들어보니까 그 내용이 우리 김일성 주체 사상을 그대로 뺏긴 거 같다는 거야. 사실 하나님하고 김일성하고 이름 바꾸면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근데 비슷한 내용이라는 거예요. 그게 뺏겼다는 거. 성경이 뺏겼다는 거예요. 자기들을 거를. 그 선교사님이 묻기를 그 주체 사상이 몇 년 몇 년 정도 만들었냐 하니까 뭐 뭐 길어봐야 70년 아니겠습니까. 성경이 몇 년 된 것인 줄 아냐? 최소한도 2000년이 됐다. 2000년 이상 된 것도 있다. 그러니까 누가 누구 누구 거를 뺏긴 것 같으냐? 그제서야 자신들이 속았다는 걸 알고 복음을 받아들이기 이제 시작을 이제 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누구다 먼저 먼저 받아들인 것에 대한 영향을 받는 겁니다. 어린아이들은 선입견이 없는 거죠 여러분. 선입견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수용성이 있는 거예요. 수용성이 잘 받아들이는 겁니다.

[19:04]자 어린아이들은 단순하죠. 생각이 복잡하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복음을 받아들이는데 굉장히 힘들어지는 거. 왜? 자기 자신 안에 있는 경고한 진. 그리고 자신의 경험과 지식의 세계에 속에서 만들어진 어떤 세계관이 있기 때문에요. 그래서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귀를 꽉 막고 듣지 않으려고 하면 하나님 복음이 들어갈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어린아이의 시기에 무엇을 집어넣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여기도 이제 어린아이를 파이디온이라고 하는 단어를 쓰는데 이 파이디온이라는 말은 12세 미만의 어린아이들을 말합니다. 그래서 통계에 의하면 여러분 20명 중에 19명이 25세 이전에 복음을 듣고 크리스천이 됐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복음을 받아들일 확률은 점점 점점 낮아요. 그러니까 길가밭 같이 딱딱해지는 것이죠. 근데 어린아이들은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요. 그래서 우리가 전도를 할 때도 어른들과 아이들을 다 해야 되지만 사실 어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는 수고도 하고 뭐 밥도 사 드리고 심부름도 해 드리고 대가한 만이 집을 하는데 나중에 보면요 아 안 믿는 분 너무 열매가 결과가 적어요. 근데 아이들은 복음을 전하면 거의 그냥 복음을 받아들여요. 흡수력이 대단한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 가장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는 곳이 어딘가 하면 어릴 때 그 아이에게 무엇을 넣어주느냐의 싸움이에요. 무슬림들이요 자신의 아이들에게 코란을 가르치는데 이 굉장히 열심히 해요. 미국에서 무슬림 가운데 어떤 선교 사역을 하시는 분들에게 얘기를 들었어요. 아이들에게 무슬림이 그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코란을 가정 교사를 대 데워서 가르친다는 거예요. 이건 어마어마한 거예요. 여러분 지금 북한에 최대가 돌아가고 있는 힘 중에 하나가 뭐냐면 유치원 때부터 이 주체 사상을 가르치는 거예요. 그게 세뇌가 돼 있는 거예요. 그게 일평생에 자기의 인생을 움직이는 여러분 어린 시절에 다윈의 진화론과 같은 게 딱 셋업돼 있으면 성경이 안 들어오는 거 안 믿어지는 거예요. 이 먼저 뭐가 들어갔냐의 싸움이에요. 어릴 때 학습한 게 평생 간다는 거예요. 어릴 때 먼저 들어간 거. 그 부모가 해야 될 굉장히 중요한 일 중에 하나는 자녀들에게 어린 시절에 말씀을 가르쳐. 이 파이디온이라고 하는 단의 의미하면 12세 이전에 성부가 난다는 거 성부. 물론 하나님이 강권적인 역사 속에 나중에라도 구원 얻는 역사는 하나님이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가장 복음의 흡수력이 있는 거든 12세 이하라 한다. 여러분 죄를 인식할 이게 죄다.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 아주 꼬마 아이들라도 죄라고 하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복음을 들을 준비가 되는 거예요. 죄에 대한 인식이 생기면 이미 복음을 설명할 수 있어요. 이해할 수 있게 하고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려고 할 수 있다는 거죠. 자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이 말이 그런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을 때 있는 그대로 아멘 할 수 있는 자가 복이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나라는 누구에게 임하는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주신다는 거요. 왜? 자기 안에 어떤 것을 채워져 있지 않고 비어 있는 상태. 하나님이 주시면 기쁨으로 받는 거죠. 그래서 아이들의 특징은 아이들은 여러분 그냥 주는 받는 거예요. 어른들에게 하면 약탈치 뭐 뭐 이게 왜 주지?

[23:09]뭐 생각하다가 지나가 버리는 거요. 여러분 아이들은 자기의 주장을 갖고 있지 않아요. 자기의 것을 아직도 완전히 경고하게 세워져 있지 않다는 거죠. 그 선물을 주면 그냥 선물을 받아들이는 거죠. 잘 받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복된 어린 아이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에게 선물로 주어진다는 거요. 구원은 우리의 자격에 의해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일방적으로 주시는 은혜예요. 그 선물을 누가 받습니까? 그냥 어린아이와 같이 그냥 받으면 되는 거예요. 심플한 겁니다. 심플한 거. 너무 철학적으로 너무 이성적으로 많은 걸 따지고 많은 것을 아는 사람들은 고민고민하다가 다 지나가 버려요. 머리를 너무 쓰다 보면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겁니다. 구원의 선물을 받기 위해 내가 무엇을 갖춰야 할 것도 없고 설명해야 될 것도 없고 내가 잘 날 이유도 없고 그냥 선물은 받으면 되는 거예요. 아멘. 이게 여러분 놀라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이 구원을 선물로 준 것이기 때문에 선물은 받으면 되는 거예요. 아무 조건이 없어요. 땡큐 하고 받으면 되는 거예요. 선물은 받으면 되는 거예요. 받은 자의 것이에요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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