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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BEST 설교 | 한적한 곳으로 가사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마가복음 1장 35절 ~ 37절

CTS BEST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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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이 식당을 가보면 어느 식당은 이 파리를 날리고 있는데 그 옆은 줄 서 있어요. 그렇죠? 여러분 그런 걸 많이 발견합니다. 어, 왜 이 집은 이렇게 파리를 잡고 있는데 옆집은 이렇게 줄을 서느냐. 간판도 비슷해 보여요. 원조 뭐 또 그 옆에는 진짜 원조 뭐 하여튼 이 간판들은 다 비슷해 보이고 메뉴도 비슷해요. 근데 달라요. 그 안에는 뭐가 있습니까? 비밀이 있는 거죠. 한 집은 망할래야 망할 수도 만하기 어려울 무슨 비밀이 있는 거예요. 그것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겠죠? 어떤 경우에는 몇 대에 걸쳐서 몇 대에 걸쳐서 냉면 하나만 해도 그 육수가 몇 대를 걸쳐서 그 뭐 물 부으면 될 것 같은데 그게 아니고 그 혀를 감싸고 도는 오묘한 맛. 예 그래서 뭔가 홀린듯 그 집에 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어떤 힘이 있는 거죠. 그게 비밀인 것입니다. 무림의 고수들도 비밀이 있다는 거죠. 비밀은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 그토로 드러난 부분만 보면 우리가 알 수가 없습니다. 어 우리는 드러난 부분보다 숨겨진 부분이 더 모든 걸 결정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간판이 아니죠. 그렇죠? 그 뭐 시설이 아니고 그 맛 식당이면 그 비밀입니다. 주님의 공생에도 어 우리가 살펴보면 외적인 활동만 보면 안 됩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또 병든 자를 낳게 하시고 이런 것들 그 복음서를 따라가다 보면 그 행적 곳곳에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마가복음 1장은 오늘 길죠. 제들이 제가 오늘로 해도 12번째 설교를 하고 있는데요. 45절까지입니다. 오늘은 35절 한 구절에 집중하려고 하는데요. 한 구절 이기 때문에 그저 서쳐 지나갈 수 있지만 간단한 내용이 아니라는 겁니다. 여기에 비밀이 있는 것입니다. 어 마가는 비밀스러운 행적을 예수님의 그 행적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드러난 외적인 활동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생활 숨겨져 있는 부분을 밀착 취재하고 있는 듯한 기재의 모습이에요. 자 주님의 공생의 출발에서부터 눈에 띄는 것은 기도 생활입니다. 우리 앞부분에서도 이미 홀로 광야에서 40일간 기도하신 장면을 이미 보았습니다. 주님이 기도하시는 모습은 제자들에게 아주 특별한 모습이죠. 기도하는 모습을 제자들이 나중에 다 이제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일종의 모델이죠, 모델. 예수님의 제자들이 앞으로 지상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하여 매우 중요한 하나의 모습이 바로 기도하는 예수님의 모습이에요. 근데 안타깝게도 주님의 기도하는 이 모습을 제자들이 문득문득 보았지만 별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복음서에서 확인되는 것은 뭔가 하면 가까이 있다고 배우는가? 그렇지 않은 거 같아요. 다 공개해도 비밀을 다 공개해도 아는 사람만 아는 겁니다. 위대한 인물과 같이 살면 영향을 받을까?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전혀 받지 않거나 정반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좋은 교회 다닌다고 좋은 신자가 다 되는가? 될 수도 있고 안일 될 수도 있습니다. 좋은 스승이 있다고 다 알아보는 것인가? 그렇지 않죠? 겟세마니 동산에서 주님은 생명을 걸고 기도하셨지만 제자들은 계속 졸았습니다. 예수님 참 재밌는 것은 기도하시다가 또 제자들이 어떻게 하고 있나 와서 보셔요. 그 자니까 깨라 깨라 경상도 말로는 깨배해 가지고 이렇게 쓰어요. 근데 어 옆에서 비밀을 알려 주면 와 하고 감탄하고 존재적으로 반응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뭔 소리야? 잔소리 같은 소리 하지 마. 그럴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구원자이시기도 하지만 인류의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드러낸 리더라고 본다면 복음서를 우리가 유심히 보아야 합니다. 뭐가 있는 것이죠. 우리는 무엇을 시작하려고 하면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홍보하고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뭐 대단한 것을 알려 주려고 하고 내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를 이제 알리려고 신경을 씁니다. 그러나 주님은 드러내기보다 숨으셨어요. 광장보다 광야에서 시간을 더 많이 보내시고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면 결정적인 것을 우리가 놓치게 되는데 마가는 오늘 이 한 구절을 통하여 우리에게 그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 오늘 35절을 다시 한번 유심히 보겠습니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자 여기에 새벽이라는 것과 한적한 곳으로 가셨다 그랬습니다. 이것은 아직 사람들이 일어나기 전에 예수님이 어디론가 잠적을 하신 겁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어디로 가시는지 알리지 않으셨습니다. 근데 한적한 곳으로 가신 이유는 기도하기 위하여. 자 여기서 한적한 곳이란 일상과 거리를 둔 공간입니다. 주님은 기도하기에 적합한 장소를 찾으셨었습니다. 어디에서든지 기도하면 되지. 예 어디에서든지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특정한 기도의 공간은 중요합니다. 공간이 참 중요해요. 이 공간의 의미가 참 중요합니다. 여러분들 오늘 이렇게 예배에 오신 것도 이 공간이 해주는 의미 그렇죠? 예수님이 이 성전 구약 시대도 성전 성막 시대부터 시작해서 그 공간이라는 이 공간의 의미가 있어요. 여러분 이 백화점과 성전 뭐 오늘 예배당도 그렇습니다만은 성전에 비슷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뭔지 아십니까? 비슷한 점이 몇 가지는 있는데요. 뭘까요, 여러분? 가장 중요한 것 하나가 있습니다. 옆에 이 옆에 동네 가면 백화점이 있죠, 여러분? 그기와 우리 예배당의 차이가 뭐 있나요? 같은 점이 있나요? 퀴즈입니다.

[6:27]창문이 없다는 겁니다. 예. 특히 구약 시대 성막 같은 경우에도요. 이 물개 그 가죽으로 더 풀 완전 덮개를 만들어 외부에 빛이 안으로 못 들어오게 합니다.

[6:44]완전한 차단을 해요. 이 백화점도 창문이 없습니다. 이 창문이 없게 하는 이유는 뭐냐면 오직 그 안에 들어가는 순간 에 상품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창문이 많으면 예를 가다가 뭐 이렇게 밖에 비가 오거나 이러면 물건 사려고 하다가 그냥 집에 가 버리잖아요. 산만한 것을 다 차단시켜 버렸습니다. 하나에만 집중하게 하는데 특징은 백화점은 상품에 오늘 예배당은 성전은 어디요? 하나님에게만 집중하는 불필요한 전시나 이런 것들을 다 최소화시키는 것이죠. 자, 여러분 오늘 음 하나님의 임재는 어디에서나 가능하지만 특별한 임재를 구하는 장소. 그렇죠? 우리가 수양관을 짓고 있는데도 공간적 의미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리조트나 이런 데 가면 어 놀고 싶다 이제 이런 분위가 있다면 수양관 기도원 이런 데 가면 기도하고 싶다 이제 이런 게 이제 찾아오는 게 이 공간적 의미가 있습니다. 요즘 주일날 이제 인턴넷으로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시는 분들이 뭐 불가피하게 어떤 사정 때문에 그러시는 분도 계시지만 이 예배당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공간적 의미는 매우 중요한 것이죠.

[8:24]자 마태도 이 부분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14장 23절에 보면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이 장소적 공간을 이동하신 거죠. 기도하시기 위해서 어떤 특정한 공간으로 가셨는데 예수님은 산에 오셔서 특별히 겟세마네 동산에 예수님이 자주 드셨던 곳입니다.

[8:51]자 오늘 우리의 시선을 곤란하게 하는 곳이 매우 많습니다. 그리고 오늘 현대인들이 집중력을 가지기 어렵죠. 몰입이 잘 안 되는 거 우리가 눈을 감는 이유도 기도할 때 눈을 감는 이유가 뭘까요? 이 집중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눈을 뜨고 기도해도 되는데 눈을 감고 기도하는 것은 집중력 손을 모으는 것도 다 집중력입니다. 무릎을 꿇는 것도 뭐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집중하는 하나님에게만 그러니까 우리는 특별히 기도하는 장소로 가실 때 한적한 곳으로 가사 기도하는 장소에 공간에서 더 깊은 기도의 경제로 나아가기 위한 어디에서나 기도해도 되지 그러나 특별한 시간에 구별이 필요하다는 것을 또 말씀하고 있습니다.

[9:33]시간은 언제입니까? 새벽 아직 밝기도 전입니다. 주님은 대중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는 시간을 가셨어요. 언제든지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일상을 시작하기 전 홀로 하나님 앞에 쓰는 시간을 주님이 가셨습니다. 이때는 어때요? 공동체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지만 일대일로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 예 개인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대면 하나님과 대면하는 주님은 새벽 아직 밝기 전에 일어나셨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매우 중요한 부분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매우 치열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치유하는 사역은 상당한 에너지가 드는 거죠. 특별히 반대 세력들이 많았고요. 공격이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어느 사역 하나라도 간단한 것은 없습니다. 그 주님은 어쩌면 하나님에게 나아가야 할 필요를 느낀 거죠.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장악하는 이 세상에서에서의 사역은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입니다. 그 육체를 입으신 주님으로서 육체적 한계도 느끼셔서 한 번은 주님이 풍랑이는 바다 위에서 타고 배를 타고 가시다가 제자들과 가시는데 그 풍랑이 인해서 배가 이 막 파선할 정도의 그런 풍랑이 일어났는데도 예수님은 배 고물을 그 선미죠. 그 배 고물을 배고 주무셨다는 얘기를 해요. 저 이은 뭘 얘기합니까? 뭐 예수님이 뭐 평안을 어디 언제나 평안을 지셨다. 그런 것도 있지만 예수님은 격무로 인하여 매우 피곤하셨다는 겁니다. 바로 앞부분 가버나움의 사역이 오늘 이 35장 앞부분에 나오는데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을 보면 가버나움에서의 예수님의 사역은 거의 24시간이에요. 풀로 꽉 찬 어 사역이 있었습니다. 전날 밤에도 늦은 시간까지 사역이 있었습니다. 그 육체적으로 상당히 소진되었을 것으로 보여져요. 여러분 전날 늦은 시간까지의 과중한 사역을 하신 주님이 새벽 일찍 일어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육체를 가지고 오신 예수님으로 그리고 아침 이런 시간부터 많은 일을 감당해야 한다면 새벽 이 시간은 휴식이 필요한 시간이에요. 심히 필요한 시간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새벽 아주 일찍 일어나셨다는 것은 무엇을 보여줍니까? 기도하는 일이 다른 어떤 일보다도 우선적인 일이요 중요한 일이라는 거 우리가 결심을 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살아가려고 하지만 현실의 여러 가지 일들이 밀려오면 그냥 밀려 다닐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가장 먼저 무슨 일을 하느냐? 이게 미래를 결정하는 일입니다. 주님에게 있어서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신 일은 다른 어떤 것과도 대체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주님은 무엇을 하기 전에 가장 먼저 아버지를 찾으셨습니다. 이건 뭘 의미합니까? 주님은 아버지와 분리되어 어떤 일도 할 수 없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기도하는 시간은 어떤 것에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새벽 아직 밝기도 전에 기도하러 가시는 모습은 이 모습은 마가는 스냅 사진처럼 한 컷을 딱 잡았어요. 어쩌면 빗겨날 수도 있는 이 장면을 마가가 포착을 한 겁니다. 복음서 안에서 만날 수 있는 비경을 오늘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는 거죠. 사실 마가가 이 부분을 지나쳐 버렸다면 우리는 또 놓칠 수도 있는 부분인데 마가는 이 예수님의 이 아주 은밀하게 아무도 모르게 새벽에 기도하러 가신 이 장면을 포착하고 기록해 놓으신 거죠. 이건 정말 우리에게 놀라운 선물이에요.

[13:19]그리스도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한적한 곳으로 찾아 기도하셨다는 것은 매우 도전적인 것입니다. 그 전날 아주 풀로 완전히 소진될 정도로 일을 하셨던 그 주님이 이 아침에도 이런 이런 새벽에 기도했다는 거 여기에 비밀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 여기에 차별화된 삶의 비밀이 있어요. 왜 그토록 피곤한 몸을 이끌고 새벽에 기도의 자리로 가셨는가? 다르게 표현하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침부터 밀려오는 사역을 도무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새벽에 기도로 시작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펼쳐질 하루를 살아낼 자신이 없었다고 해도 과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것과 내 육체의 피곤함을 맞바꾸어서라도 할 수밖에 없는 이런 바로 이 아버지와의 시간을 보내는 거.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예를 들면 서울로 갈 때 고속도로 아무리 급해도 빨리 가고 싶어도 고속도로에 올라가기 전에 중요한 게 뭐냐? 주유소에 기름을 넣고 가야 돼요. 주님에게 있어서 새벽은 절대적 시간 하늘로부터 능력과 지혜를 공급받는 시간. 승부는 여기에 있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만납니다. 친분을 맺고 뭐 인간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누군가를 만나야 내 인생이 풀릴 것처럼 여기고 연주를 중요하고 인맥을 중요하고 학맥을 중요하게 여기고 여러분 그러나 주님에게서 배우는 매우 중요한 메시지는 능력 있는 뭐 대단한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만남이 하나 있어요. 바로 하나님과의 만남. 하나님과 일대일의 만남.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이 시간이 인생을 결정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의 승부처는 가장 첫 시간에 누구를 만나느냐. 우리는 열심히 사는 것에 인생의 승부가 난다는 문화 안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도한 활동주의 시대예요. 사람들이 숨 가쁠 정도로 바쁘게 살아갑니다. 경쟁에 내몰린 사람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죠. 그래서 기도는 무력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처럼 인식하고 있습니다. 한적한 곳으로 가는 것을 비생산적으로 봅니다. 여러분 새벽에 일어난다는 것은 쉬운 일 아니죠. 어제의 피곤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면 더 힘들어요. 전날 저녁 늦은 시간까지 일을 했다면 몸은 천금만금. 우리는 피곤하기 때문에 새벽의 기도를 건너뛸 수 있어요. 그러나 반대로 해야 돼요. 피곤하기 때문에 더 기도해야 합니다. 충분히 잠을 자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육체를 가지고 있는 예수님도 마찬가지예요. 그럼에도 새벽에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강한 피로를 느꼈기 때문에. 장사를 하시는 분인데요. 아주 새벽 일찍 시장에 나가시는 거예요. 국제 시장 같은 큰 시장. 그 왜 그렇게 일찍이 나가느냐? 가장 일찍이 나가야 가장 신선한 농산물을 구입할 수 있는 거. 그리고 가장 좋은 재료로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하는 게 당신의 철학인 거예요. 여러분 인간이 절실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일어나요. 어떤 것에 절실한가에 따라 달라지죠. 주님이 새벽에 일어나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영적인 피로를 강하게 느꼈기 때문에.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기도의 필요를 느끼셨습니다. 아버지와의 시간보다 더 절실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야말로 기도보다 더 절실한 것이 있을까요? 여러분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 많습니다. 다급한 필요들은 끝도 없어요. 그러나 가장 절실한 필요는 기도입니다. 주님이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신 것은 육체적 필요보다 영적인 필요가 더 중요함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거. 영적 필요가 채워지면 다른 모든 문제를 뛰어넘게 되는 것입니다. 자 주님이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신 이 모습은 어떻게 보면 선제적 삶이에요. 언제라도 기도하면 되지만 새벽에 기도하셨다는 것에 많은 교훈이 있습니다. 주님은 새벽에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 영적인 공급을 받고 충전을 하셨어요. 기도는 하나님과의 커넥트 되는 하나님과 접촉되는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하늘의 그 은혜와 능력과 지혜를 공급받는 리차지 충전되는 시간.

[18:10]여러분 핸드폰을 다 갖고 계시잖아요. 휴대폰 다 갖고 계시잖아요. 여기에 매우 중요한 게 뭐예요, 여러분? 아무리 업그레이드 된 최고의 것을 갖고 있어도 충전을 시켜야 돼요. 그래서 집에 가면 항상 뭐 합니까? 충전하는 거 충전. 풀 차지. 충전 안 하면 그 기계는 고물이 돼요. 여러분 기도는 하나님과 하늘에부터 하늘의 에너지를 받는 거죠. 여러분 일을 하면 소진됩니다. 우리의 삶은 늘 소진이 되고 있는 거 충전을 해야 돼요. 육체를 위해 먹어야 하는 것처럼 영혼의 충만을 위해 말씀과 기도가 필요합니다. 사역과 활동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영적으로 우리가 계속 채워지지 않으면 우리는 연약한 존재기 때문에 언제든지 무너질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얼마나 악하고 살벌합니까? 얼마나 많은 문제들과 싸워야 합니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엄청난 소모전을 매일 버리면 살아갑니다. 영적 싸움이 치열합니다. 신자로서 제대로 살아려고 하면 살아 가려고 하면 부대끼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다. 여러분 식장에서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막 미움이 일어나잖아요. 그렇죠? 미운 사람이 있으면 그 미워하는 일이 엄청난 에너지를 쏟는 거예요. 그렇죠? 그 미워하는 사람을 그대로 미워해 버리는 것만으로 끝 끝나지 않고 그 미워하는 것은 쉽지만 그 사람을 사랑하려고 하면 엄청난 에너지가 또 들어야 돼요. 예수 안 믿는 사람을 예수 믿게 하려고 하면 속을 뒤집는 일을 참아내야 합니다. 이 에너지입니다. 어마어마한 에너지입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웃어야 웃고 넘어가려고 하면 이게 내 힘으로 됩니까? 안 됩니다. 비교하고 경쟁하는 세상에서 때로는 손해 보는 일을 선택한다는 것은 내 힘만으로 감당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집에 가서 끙끙 앓고 어떤 때는 막 부글부글하고 근데 그것을 성화시켜 내는 작업. 세상에 많은 것들이 우리를 어 부러워하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만족해 내는 이 모든 삶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세상이 우리의 힘을 빼려고 달려드는데 신자다운 삶을 유지하게 하는 것은 에너지가 필요한 거예요.

[20:30]여러분 목사가 심방을 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개인의 문제를 계속 듣고 자기 살아온 히스토리를 다 끊고 한 몇 시간 듣고 그 고통하는 얘기를 듣고 같이 아파하고 그를 위해서 말씀을 찾고 필요한 말씀을 전달하고 같이 찬양하고 같이 기도하고 나면요. 심방 한 집만 해도 소진이 돼요, 소진이. 그런 집 한 다섯 집을 갔다 오면요. 뻗어요, 뻗어.

[21:07]여러분 소진되고 탈진되면 무슨 힘으로 삽니까? 세상을 이길 힘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입니까? 인생에서 중대한 과제는 지속하는 것인데요. 처음은 누구나 멋지게 출발하고 처음에는 누구나 잘 하지만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해요. 왜? 소진되고 탈진되고 사라져 버려요. 한때 열심은 누구나 다 하죠. 한 때 전성기를 구다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한 순간에 다 사라져 버려요. 여러분 믿음생활 하다가도 어느 순간 둘러보면 함께 하던 사람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쳐 넘어지고 시험에 들고 각가지 문제에 얽혀 헤매다가 무너지는 겁니다. 중요한 원인은 체험의 작업이 없으면 고갈되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장거리입니다. 지금 잘 한다고 잘하는 것 아닙니다. 끝까지 잘 해야 합니다. 최후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십자가 상에서 다 이루었다 선포하셨죠. 승리의 선포입니다. 주님은 겟세마니 동산에서도 기도로 승부를 걸었습니다. 주님은 그의 삶의 한가운데 기도가 있었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의 한계를 인정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소진되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활동으로 지쳐 있습니다. 만성 피로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아요. 그렇지 않죠, 여러분? 열심히 했는데 나중에는 빈손이에요. 누가복음 5장에 나는 베드로처럼 밤이 맞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은 것이 없는 고기 잡는 일에 전문가잖아요. 전문성이 안 통하고 자신의 경험이 먹혀들지 않는 순간을 맞이할 때가 있다는 거 그게 인생이에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열심만으로 설명이 안 됩니다. 분명히 인간의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 하나님이 돌아보면요. 우리 인생에 남는 게 뭐냐면요. 하나님이 도와주신 것만 남아요. 세상은 늘 흔들리고요. 삶은 불안정합니다. 요즘 코로나로 인하여 더 뒤숭숭하죠. 근데 여러분 코로나로 뒤숭숭하지만요. 코로나 끝나면 단 일로 또 뒤숭숭해져요. 그 요즘 코로나 때문에 여러 뒤숭숭이 많이 없어졌어.

[23:26]다른 환자들도 많이 줄었대요, 병원에도. 알고 보면 세상은 늘 이런 거죠. 복잡하고 까다롭고 위험하고 예수님의 생애도 마찬가지입니다. 격동의 격동기 한가운데 여러분 팔레스타인이 격동기 한가운데입니다. 유대 민족은 정치적으로 로마의 지배를 받고 경제적으로는 파산 상태고 영적 도덕적으로 암흑기에 깜깜한 그 시대 속에 하나님이 아버지 그 아들을 보내셔서 지상에 그 미션을 감당하게 하셨는데 그 숨이 차는 얘기예요. 주님은 그 모든 것을 이겨 내셨는데 그 비밀이 새벽 아직 어두울 때 아침이 되기 전에 기도하셨다는 거죠. 여러분 파도가 쳐도 배에 평형수를 채워 구녕을 잡으면 뒤집혀지지 않고 목적지로 가요. 기도하는 시간이 뭔지 아세요? 평형수를 채우는 거 같아요. 기도가 약해지면 거센 파도를 이길 재간이 없습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꾸준히 기도하는 성도들을 보면요. 안심이 돼요. 단단함이 있어요. 변함없이 꾸준히 늘 기도의 삶을 축적해 왔던 사람들을 보면 안 증가했어요. 균형이 잡혔어요. 단단해요. 여러분 꾸준히 기도한다고 해서 어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어려움이 닥쳐도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은 달라요. 저는 이걸 보고 보고 확신을 해요. 여러분 그것은 하나님이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 어려움을 기도하는 가운데 이겨 내게 하신다는 거. 아멘. 승부는 하늘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려 주시면 됩니다. 기도의 시간에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죠. 되게 숨 막히는 순간이 닥치면요. 사람들은 숨 막혀 버려요.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요. 숨 안 막혀요. 왜? 영적 호흡을 고르게 지금 하고 있기 때문에. 온갖 문제들로 회오리 바람이 불어도 마음을 마음이 요동하지 않습니다. 모든 위협으로부터 하나님이 지켜 주십니다. 아멘. 폭풍이 몰아칠 때 배를 부대에 굵은 밧줄에 매여져 있으면 떠내려가지 않죠. 이 굵은 줄이 뭘까요? 기도의 줄. 하나님에게 연결된 줄이 습관을 쫓아 오래되면 아무도 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바쁘고 피곤해도 기도하지 않는 명분과 이유를 찾아서는 안 되는 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벽에 일어날 이유가 있습니다. 이런 새벽 어둠을 뚫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는 길은 선한 일은 아니죠. 그러나 그 자리는 만사를 제치고 나아갈 만한 자리입니다. 기도 없이 시작한 하루는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방패 없이 적장 앞에 선 것과 같아요. 바람막이 없는 벼랑 끝에 서 있는 거와 같습니다. 기도 없는 삶은 망가지기로 작정한 것과 같습니다. 기도는 신비로운 것입니다. 기도는 설명이 안 돼요. 기도는 이론이 아닙니다. 기도를 분석하려고 해서 안 돼요. 기도는 영적인 신비로운 경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다 보면 나도 모르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싸늘했던 내 마음이 따뜻해지고 요 염려와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마음 안에 평안이 찾아와요. 안 될 것 같았던 것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단 말이죠. 그러므로 기도와 믿음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기도하다 보면 믿음의 상승 작용이 일어나요. 기도하기 전까지는 마음이 깔아 앉아 있었습니다. 으기소침에 있었는데 기도하다 보니까 믿음이 일어나는 것이죠.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마음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들이 아니라 사람들이 인정과 지지와 박수가 아니라 하나님 한 분의 지지. 하나님의 응원만 있으면 충분한 거죠. 사람들의 평가는 늘 오락가락합니다. 사람들의 의견은 다양합니다. 군중의 소리는 다양해요. 그러나 주님은 군중의 소리에 휘둘리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군중 심리에도 현혹 당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이 구름떼같이 몰려올 때도 하나님에게로 주님은 피하시어 피하시죠. 그리고 주님에게 필요하고 절실한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기도의 능력이 갈수록 과소 평가되고 있습니다. 기도가 우선 순위에서 자꾸 밀리고 있어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모습에서 기도보다 더 중요한 우선순위는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처럼 효과적인 삶은 없습니다. 기도는 낭비가 아닙니다. 기도하지 않는 삶이 낭비 중에 낭비입니다. 기도 없는 삶은 풍성한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요. 왜? 하나님이 배제된 삶은 인간의 한계만 드러나기 때문에. 오해하지 마십시오. 기도는 무기력한 사람이 하는 게 아닙니다. 기도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삶을 사는 비결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본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 그것을 본 사람은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저는 목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를요 제 본 정신으로 딱 차리면요. 목회는 하루도 못 할 것 같아요. 그 말은 뭐냐? 본 정신도 안 하고 있다는 얘기겠죠? 저는 지금도 한없이 부족하지만 기도를 하면서 누리는 축복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기 때문에. 여러분 기도가 약해지면요. 자기 힘이 들어와요. 인간의 힘이 들어갈수록 실패합니다. 여러분 오늘날의 현실이 참 어렵죠? 그대로 보면 코로나 코로나로 인하여 상황이 심찮지 않습니다. 저도 목회의 세계에서 심리학하면서 이런 강조를 지금 처음 만나 봤습니다. 코로나 상황이 계속 길어지고 지금 어떤 형태로 지금 어떤 사람은 코로나가 지금 초기 단계라고 해요, 초기 단계. 지금 우리는 지금 정신 없는데 이게 초기 단계일 뿐이다. 세컨드 웨이브는 두 번째 오는 것은 강도가 지금보다 10배도 높을 수도 있다. 무슨 일이 우리 앞에 일어날지 몰라요. 교회는 모여야 되는데 코로나는 모이는 것을 굉장히 이게 경계하게 만들죠. 어떻게 보면 오늘날 보면 염려가 많이 생길 수밖에 없는 환경이에요.

[30:19]새벽 아직 날이 밝기도 전에 세상의 문화와 세상의 메시지와 세상의 영향이 나를 지배하기 전에 여러분 주님이 알려주신 비밀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기도를 먼저 배울 것인가. 핸드폰 조작을 먼저 익힐 것인가. 전쟁이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죠.

[30:35]아침에 일어나서 핸드폰을 먼저 켤 것인가? 주님 앞에 먼저 무릎을 꿇을 것인가? 여러분 새벽의 기도의 자리로 나가는 이 모습은요. 어떻게 보면 원시적 삶이에요. 2000년 전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아날로그적 삶이에요. 미미해 보이고 별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이고 무능해 보이고 무기력 이렇게 보이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엎드리는 것처럼 보이는 그러나 여러분 이게 위대하신 그리스도의 삶의 매우 중요한 삶의 승리의 비밀이 여기 있어요.

[31:19]여러분 습관을 보면요. 자신이 귀중하게 여기는 게 무엇인지 보여줘요. 어떤 습관이 나에게 잡혀 있는가 내 내가 누구인가를 보여주는 겁니다. 운동이 습관화되었다는 말은 건강이 자신의 삶에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 욕망과 습관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바라는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새벽에 일어나 기도로 시작하는 삶이란 신자라면 누구나 로망입니다. 그렇게 살고 싶어요. 좋은 주는 늘 그런데 실천하면 사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오늘 현대의 삶의 문화는 끊임없이 분주하게 만들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보다는 우리의 능력과 재주와 경험과 전문성으로 자신의 삶을 탑을 쌓아 가려고 하는 유혹에 빠져 있어요. 기도가 중요 하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부족해요. 여러분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서라면 설탕에 딩군 도나스보다 그 맛 없는 브로콜리를 양념 없이 먹는 게 건강에 훨씬 더 낫다는 것은 알죠. 그러나 실제로는 도나스 가게 앞에 줄을 서 있어.

[32:32]하나는 먹고 하나는 손에 들고 먹으면서 하는 말 오늘만 그런데 문제는 어제도 그랬다는 거. 습관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마가가 놓치지 않은 한 장에 이 사진이 35절이 기가 막히게 우리에게 각인시켜 주는 겁니다. 기도만 기도는 마음만으로 되는 거 아니요. 기도는 몸으로 하는 거예요, 몸으로. 기도하는 자리와 기도하는 시간을 정해 놓고 생명을 걸고 어떤 것과도 양보하지 않고 아버지를 먼저 만나기로 결단하는 인생. 아, 이거는 비밀을 아는 자들만 아는 거죠. 여러분 기도는 세상을 따라 살지 않겠다는 신자들의 새로운 습관입니다.

[33:30]아침 이런 시간 세상의 것들에 맞대려지기보다 하늘의 입맛을 드리는 일이 새벽에 한적한 곳을 찾아야 할 이유가 되는 거룩. 신자는 자기 힘으로 땅을 파서 먹고 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생존을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께 엎드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벽에 하늘을 바라보았어요. 왜? 하늘로부터 만나와 매출하기를 내려주셨기 때문에 40년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하늘 문을 열고 만나와 매출하기를 내려 주시면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메시지의 핵심은 뭐냐? 너희들의 생존은 하늘에 달려 있다.

[39:41]아멘. 그것을 자녀에게 물려주었다면 가장 위대한 유산으로 물려주는 것입니다. 기도로 싸운 영적 내공은 무서운 겁니다, 여러분. 경험해 본 분들은 알아요. 기도로 시작하는 하루와 그렇지 않은 삶은 전혀 달라요. 새벽은 다른 사람이 전혀 경험하지 못하는 성스러운 시간입니다. 여러분 어두로 갈 수 없다면 집 안에서도 기도하는 자리를 만드세요. 차고나 베란다나 혹은 옷장 옷장에 들어가서 저는 호주에서는 그 우리 이 붓박기장이 넓어요. 아 굉장히 넓어. 그래서 어떤 많은 성도들이 이 붓박이장을 기도 자리로 하는데 그 그 호주에 그 방석이 있어요. 이게 코알라 그려진 이렇게 털이 달려 있는 아 방석이 있는데 아 그 간증들이 많아. 그 그기에 얼마나 끌어안고 그 새벽마다 기도를 했는지 그게 이제 다 털이 빠지고 가죽까지 다 드러나고 그게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기도한 거 있어요. 아 부모의 그런 너덜너덜해진 방석을 자녀에게 선물로 줄 수 있다면 얼마나 멋있겠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조용한 곳에 간다고 다 되는 것은 안 좋은 조용한 곳에 가도 방해꾼이 있어요. 바로 사단입니다. 주님이 광야에 홀로 기도하실 때도 사단이 공격했어요. 기도의 자리는 영적 전쟁이 언제나 일어납니다. 우리의 마음을 공격하고요. 잡당 공상과 영적 교란들이 일어납니다. 이상한 상상으로 시간을 허비할 수도 있습니다. 기도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훈련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공격들 시험을 이기고 기도의 자리에서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오늘 36절 37절 보니까 시몬과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사람들이 예수를 계속 찾고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숨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는 굿이 가 아닙니다. 낡은 종교적 의식이 아닙니다. 기도는 최첨단입니다. 최고의 일입니다. 가장 위대한 일입니다. 새벽에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기로 작정해 보십시오. 분주한 삶 공한 반복 채워지지 않은 허기짐 허공을 치는 듯한 삶을 끝내는 기막힌 삶으로 우리를 주님이 초대해 주고 있습니다. 소진되어져 가는 삶을 멈추고 싶다면 신비로운 힘을 제공하는 이 기도의 시간을 하나님과 약속하시고 일평생 달려간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살아 가게 만드는 충분한 힘을 주시고도 남을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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