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어, 이 복음서를 통해서 예수의 공생의 삶을 살펴보는 것은 아주 큰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의 지상의 사역을 마치시고 성천하셨는데 지상에 무엇을 남겨 놓으셨는가? 사실 보면 남겨 놓은 게 아무것도 없어요. 어, 또 예수님은 기독교라는 이 종교를 창시하신 분도 아니고요. 어, 또 어떤 조직을 만들어서 강화하거나 또 어떤 힘을 규합하거나 어떤 재단을 만들거나 또 거대한 어떤 종교 집단을 만드시려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사실은 우리가 기독교를 믿는다 하는 것보다도 예수를 믿는다 이게 좀 더 정확합니다. 왜냐면 기독교 예수에서 그리스도에게서 그리스도교로 넘어가면 여기에서 변질이 많이 일어나거든요. 사람들이 만들고 또 제도화되고 체계화되면서 본래 예수 그리스도가 의도하셨던 그 모습으로, 그 모습에서 많이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뭐 초상화를 남겨 주지도 않으셨고요. 예수님의 얼굴 잘 모릅니다. 우리 기독교 이렇게 서점 같은 데 가면 예수님 초상화 있는데 그 예수님 얼굴 아닙니다. 혹시 그거 집에 있던 분들 그거 계속 보고 있다면 천국 가면 헷갈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음, 뭐 조각을 뭐 동상을 만들거나 그러지 않았어요. 이 어떤 뭐 어떤 것도 남기지 않고 예수님이 남기신 것은 유일하게 12명의 제자들. 그리고 그들이 기록한 예수님의 활동을 기록한 제자들의 그 남긴 복음서. 복음서가 남아 있습니다. 이 캐톨릭 같은 데는 로마 캐톨릭에는 뭐 또 여러 뭐 다른 제자들의 책들도 도입을 했습니다만 우리는 이제 딱 4복음서에 이렇게 초점을 맞추어서 우리 정경으로 채택했습니다. 이 4복음서 특별히 공감복음, 마태, 마가, 누가복음 이 마태와 마가와 누가가 보았던 그 관점에서 기록을 했는데 놀라운 그런 공통점들이 있죠? 자, 예수님이 모든 걸 걸고 남기 초점을 맞춘 것은 예수님이 제자를 세우시는. 제자에 모든 걸 거셨다는 거예요. 독특한 그런 방식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이 그토록 예수 제자를 제자에게 모든 걸 다 거셨는가? 여기에 우리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여기에는 많은 비밀이 있고 또 여기는 놀라운 어떤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이 있고요. 또 예수님이 일을 행해 가시는 하나의 방식이 그 여기에 들어 있는 겁니다. 앞으로 마가복음 16장에 살펴보다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그 행적 안에 감춰져 있는 비밀을 하나하나 깨닫다 보면 이제 우리가 큰 이제 눈이 열리게 되겠죠. 주님이 12 제자를 부르신 목적이 뭐냐? 자, 17절이 오늘 말씀인데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나를 따라 오라. 그랬어요. 자, 여러분 누가 감히 누가 인류 역사에 누가 감히 나를 따라오라라고 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누구도 함부로 이 얘기를 할 수가 없어요. 나를 따라 오라. 이 바닷가에 게, 크랩 있잖아요. 게가 바닷가에 기는 게가 새끼 게 보고 똑바로 걸어. 그랬어요. 근데 이 새끼 게가 엄마, 아빠 게를 보니까 옆으로 가거든요. 아빠 엄마 왜 이렇게 옆으로 삐딱하게 걷느냐고. 여러분 나를 따라 오라. 이거 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는 얘기예요. 그리스도 외에는 그 누구도 인류 역사에 나를 따라오라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여러분 부모 된 분들이 어때요? 자식이 나만 따라오면 될 것 같습니까? 큰일 나죠, 큰일 나죠. 여러분 축복된 인생은 누구입니까? 좋은 스승을 만나는 일입니다. 따라갈 수 있는 스승을 만난다는 거. 이게 어마어마한 큰 축복이죠. 왜 우리 인생이 곤란스럽고 또 후회가 많은가? 아, 내가 그때에 나의 앞에서 누군가 조금 이끌어 주었다면. 좋은 모델이 되었다면, 좋은 스승이 있었다면 오늘 내 인생은 이렇게 후회하지 않았을 텐데. 이런 마음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인생의 참 스승이 있는가? 중요한 질문입니다. 내가 따라갈 스승이 없다면 무엇으로 내가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죽음까지 누구를 따라왔는가? 믿고 따를 만한 분을 만난 적이 있는가? 자 우리는 되게 믿고 따르다가 실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게는 위선 때문에 그렇습니다. 말과 행위가 일치되지 않을 때 더 이상 따르고 싶지 않아지죠. 세상에는 말과 행실이 완전하게 일치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모두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말하는 순간 모순에 빠져요. 젊은 날에는 막 겁도 없이 멋있는 말을 막 쏟아내죠. 살아가면서 아, 그 말이, 그 말에 내가 걸리는 거예요. 내가 그렇게 자신 있게 외쳤는데 내가 그렇게 모순한 모순을 내가 발견하니까 이제 말이 점점 적어지게 되죠. 여러분 그 누구도 나를 따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멀리서는 좋았는데 가까이 다가가면 아닌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나 주님은 다릅니다. 주님은 충분히 충분히 나를 따라오라 하실 만한 분이십니다. 나를 따라오라. 이건 정말 천지 개벽과 같은 음성이에요. 인류 역사에 2천년 전에 우리 주님이 제자들을 향하여 하신 이 나를 따라오라. Follow me. 이 어마어마한 메시지입니다. 여러분 제자란 뭡니까? 이 discipleship이라고 하는 이 제자란 따르는 것입니다. 따르는 거. 우리 신앙이 뭐냐? 따르는 것입니다. 누구를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에요. 그래서 제자는 동사적 삶을 살아야 됩니다. Follow라고 하는 동사적 삶이에요. 주님은 부르시고 우리는 따라가는 거. 여러분 이 따른다는 것은 매우 적극적인 행입니다. 역동적이죠. 애매모호하거나 머뭇거리는 그리고 갈등하는 그런 삶이 아니고. 주님을 따르면 삶이 명확해지는 거죠. 더 이상 혼란이 없는 것입니다. 왜? 따라야 할 분이 분명히 내 앞에 있기 때문에 더 이상 혼란하고 갈등하고 주저할 이유가 없는 것이죠. 사람들은 열심히 살고 있지만 자신이 가는 길에 대한 확신이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주님이 이 갈릴리의 촌부들을 향하여 나를 따라오라. 이 음성은 그 어부들에게는 인생의 빛을 만난 것입니다. 자 우리가 복음을 통해 이 따를 만한 분을 만났던 거죠. 바로 예수 그리스도. 우리가 길을 잃고 인생을 방황하게 될 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어요. 저는 제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예요. 예수 그리스도를 내 인생에 방황을 끝내게 해 주신 분이 그리스도예요. 그분을 만난 이후에 내 인생은 혼란할 일이 없어요. 너무도 분명한. 물론 내 자신이 연약하여서 때로는 그 길에 도달하지 못하고 따라가지 못하는 아쉬움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고 다시 바라볼 수 있고 따라갈 수 있는 방향은 언제나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언제나 그곳에 계시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면 되는 거예요. 자, 여러분 우리가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그 말씀을 하죠.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리스도는 여러 갈래의 길 중에 하나가 아니고 유일하신 분이고 그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는 존재라는 거. 그래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은 가장 완전한 길이라는, 완전한 길. 내가 확실한 길이 아니고 주님을 따르는 그 일이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라는 거. 우리 삶의 오류가 있습니다. 그리고 모순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를 따라가다 보면 그 모순과 오류가 점점 점점 없어져요. 예수를 따르는 삶이야말로 아주 명확한 것입니다. 우리가 대단한 삶을 살려고 머리를 쓰거나 방법을 따로 찾아낼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그리스도를 따르기만 하면 되는 거죠. 자, 그런데 누가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아야 되는 거예요.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모르면 그리스도를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누구십니까? 바로 그것이 오늘 우리가 복음서를 통하여 또 이 마가복음을 통하여 앞으로 16장이지만 짧은 구절이지만 장이지만 어마어마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가에 대해서 이미 계시해 놓으셨어요. 성경 전체를 통하여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계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상상하고 내가 만들어 낸 예수 아닙니다. 성경에서 이미 계시된 예수.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예수. 그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로 정치적 메시아, 경제적 메시아.
[10:33]자신의 현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해 줄 메시아만 찾다 보니 십자가에 죽으시는 예수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이 실패하고 말죠. 오늘날도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원하는 예수가 있어요. 그래서 거기에 끼워 맞추는 거죠. 자기가 원하는 예수를 만들고 자기가 주장하는 주장하고 싶은 논리를 확보하기 위해서 성경을 가져오는 인용하는 이제 이런 일들이 생기는데 그럼 예수를 따를 수 있는 게 아니죠. 예수가 나를 따라오라는 거죠. 자,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어 우리가 주님이 우리를 향해 나를 따라오라라고 말씀하실 때 우리가 해야 되는 것은 부지런히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그래요. 나 정말 열심히 살아왔대. 그게 중요하지 않아요, 여러분. 누가 그 이렇게 열심히 살려고 했느냐는 거죠. 무엇 때문에 열심히 살았느냐는 거예요. 그게 없으면요. 나중에 후회가 오는 거죠. 허무가 오고 좌절이 오고. 주님은 말씀합니다. 나를 따라오라는 거죠. 너의 열심히 중요한 게 아니라 나를 따라오라는 거예요. 여러분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내가 살고 싶은 삶이 따로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주님은 누가복음 9장 26절에 마가복음에도 있습니다만은 누가복음 9장 23절에 보면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여기 첫 번째가 뭐예요? 자기를 부인해야 되는 거. 자기의 고집을 버리고 욕심을 죽이고 자기 기분대로 살고 싶은 마음을 버려야 돼요. 개인의 야망이 죽어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제자의 길을 걸어가는 것은 하룻아침에 이루어지는 아닙니다. 시간이 많이 걸려요. 시행착오도 있고 실수도 하고.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그 연약함을 다 알고 부르시는 거죠. 우리가 주님을 따르지면 온전히 따라가지 못할 것을 주님도 알고 계세요. 예수님의 제자들이 얼마나 실수투성입니까? 그러나 그들을 끝까지 주님이 데리고 가시죠. 끝까지 사랑하시고 끝까지 그들을 인도하시고 그들이 실패했지만 결국은 예수님의 제자의 길을 걸어가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자, 오늘 여러분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 이 코로나로 어려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예배에 나오신 여러분들은 주님을 따르기로 하고. 내가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정하고 그 마음을 주님이 알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돌보심 가운데 우리를 이 자리까지 인도해 주시고 앞으로도 그리스도의 제자로 걸어갈 수 있도록 주님이 인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게 주님이 하시는 거. 중요한 것은 우리의 선택과 결단입니다. 자, 그러면 오늘 17절을 다시 한번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주님이 따라오라고 부르신 목적이 뭡니까?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여러분 제자는 누구냐?
[14:06]주님의 그물에 걸려든 사람들이에요. 물고기를 잡던 어부들이 주님의 그물에 걸려들어 이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셨어요. 사람 낚는 어부가 되리라는 말씀을 처음 들었을 때 이 어부들이 금방 와 닿았을 거예요. 그들은 물고기를 잡는 일에 익숙했습니다. 낚는 이제 대상만 바뀌면 돼요. 물고기 잡던 사람이 사람을 낚는. 사람을 낚는다는 의미는 뭘까요? 그들이 세상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만들어 낸 일입니다. 자신의 육체적 정욕을 쫓아 따르던 사람들이 이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도록 만들어 낸 일. 평생 세상의 이권과 사리 사욕과 육체적 만족이라는 믿기를 따라 살아가던 이들을 영원한 구원의 길로 이끌어 내는 일을 위하여 이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15:13]순간적 이익에 눈이 어두워서 죽음의 덫에 걸려 죽어가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영원한 구원의 길로 이끌어 내는 일을 위하여 제자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여러분 제자와 어부의 유사성이 있습니다. 사람을 낚을 것인가 고기를 낚을 것인가 그 문제죠. 제자로 부르심을 받는 순간부터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야 된다는 거. 이 고기를 여러분 이 여기 광안리도 보면 이렇게 물고기 잡는 분들이 어부들이 여기도 많아요. 그죠? 우리 요 요트 경기장 옆에도 보면 이 이렇게 그 어선들이 있습니다.
[15:59]호주에 제가 있을 때도 호주에 이 고기를 잡는 그 바닷가가 참 풍성해요. 그러니까 특별히 한국 분들이 이 낚시를 참 좋아하는 것 같아요. 낚시를 좋아해요. 저희 교회도 보면 아주 강태공들이 있어요. 강태공 성한 강씨고 이러면 태공이네. 이 생선을 잘 잡아요. 잘 잡아요. 근데 얼마나 이 낚시하는 물고기에 대해서 연구를 많이 하는지 그냥 못 잡는 것 같아요. 아무나 뭐 이렇게 던지면 잔 피는 게 아니고 아, 이 물고기도 또 머리가 좋고요. 그래서 어떤 때에 어떤 곳에서 어떤 어종을 어떤 믿기에 어떤 바늘 사이즈로. 그리고 타이밍은 언제? 아, 이게 복잡하더라고요. 그들은 보면 날마다 낚시하는 걸 생각해요. 고기를 잡는 걸 생각해요. 머리에 꽉 거기에 들어 있더라고요. 주야로 묵상하는 거예요. 머리에 물고기 잡는 걸로 꽉 찼어. 어떻게 하면 잡을 거냐는 거죠. 오늘 제자는 누구예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이제 물고기가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 초점이 그 사람에게 초점 있는 것입니다. 이 좋은 제자는 누구냐?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이죠. 왜 우리를 부르셨는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어. 여행을 하든지 취미 생활을 하든지 동창회에 가든지 출장을 가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의 관심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자신이 예수의 그물에 걸려든 것 처럼 다른 사람들도 예수의 그물망 안으로 들어오도록. 그래서 구원을 얻도록 해 주는 일이 오늘 제자들에게 부르신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나를 따라오라. 그러면 다른 사람을 낚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자, 이것이 예수님이 꿈꾸셨던 놀라운 비전이었습니다. 자, 그러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뭐냐면 어떻게 하면 좋은 어부가 될 수 있느냐는 거죠. 자, 오늘 여기 본문의 말씀에 그대로 답입니다. 나를 따라오라는 거죠. 내가 예수를 잘 따라가면 저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할 것이다. 여러분 내가 주님을 잘 따라가지 않으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주님을 잘 따르면 나도 모르게 내 주변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나올 거라는 거. 그러므로 제자도의 핵심 중에 핵심은 뭐냐면 순종입니다. 우리가 무슨 특별한 능력과 신기한 수단을 개발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순수하게 주님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 뒤에서 나와 같이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생기게 된다는 거. 여러분 주님이 부르신 제자들의 면면을 보면 그렇게 유능하거나 탁월한 사람이 전혀 없었어요. 그들을 보면 그저 뭐 영향을 미칠 것 같아 보이지 않았어요. 근데 그들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자,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주님을 잘 따르는 것입니다. 나를 따라오라는 거, 나를 따라오라. 여러분 잘 따른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주님의 말씀을 분석하지 않고 말씀 그대로 믿고 따라가는 거죠. 최고의 스승이신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대로 그분이 사셨던 대로 내가 살아가는 거. 왜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죠?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요. 왜 우리가 기도하죠? 그 말씀을 순종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힘을 주시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말씀과 기도의 모든 초점은 주님을 따라가기 위해서입니다. 왜 우리가 복음서를 살펴봅니까? 주님의 행적을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주님이 사셨던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배우는 것입니다. 자, 우리가 누군가를 본받을 것인가? 이게 핵심적인 과제예요.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의 방식은 늘 동거 동락하신 것입니다. 24시간이에요. 이것은 도제식 방식이죠. 세상의 방식과 교육 방식과 전혀 다른 차이입니다. 자 요즘 코로나로 인하여 온라인 강의가 많이 이제 성행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도 학교에 가지 않고 온라인에 수업을 받고. 자, 대학이나 뭐 일반 학교에서 온라인으로 강의를 듣고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뭐예요? 가능한 이유는 뭘까요? 지식 전달이기 때문에 그래요. 뭐 지식이 전달이라면 꼭 굳이 안 만나도 그냥 그 강의를 온라인으로 듣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그 지식만 전달받으면 되는 거 말이죠. 근데 여러분 예수님의 방식은 그게 아니에요. 이론을 배우고 지식이 늘어가게 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님을 인격대 인격으로 만나면서 주님 당신의 삶의 모든 걸 다 노출하시고 주님을 알게 하는. 우리가 누구를 닮아 가느냐? 그분에게 끌리면 닮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나를 따라오라는 이 말씀은 다른 아닌 주님의 삶에 대한 모방을 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자도의 핵심 중에 하나는 모방, 모 모방입니다. 모범이라는 거죠. 우리가 스스로 독창적인 삶을 살려고 할 필요가 없어요. 주님을 본받으면 되는 것이죠.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삶으로도 우리는 충분하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알 수가 있어요. 주님을 따라가다 보면 주님의 모습을 닮게 되죠.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을 때 사람들이 우리를 통하여 그리스도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리스도는 좋은데 오늘 많은 사람들이 무슨 얘기하죠? 그리스도는 좋은데 신자는 싫다는 거예요. 예수는 뭐 나 배 좋은데 교회는 좀 싫다는 거예요. 그 이것은 우리가 주님을 따른 게 아니라 다른 것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주님의 관련된 것들을 보여주었지만 정작 주님을 소개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를 따르고 있습니까? 예수를 만난 이후부터 우리의 삶 속에 빛을 보고 우리의 삶이 달라졌다면 그때로부터 우리는 삶을 사람을 낚는 어부의 삶이 시작이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나를 따라오라. 내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이것은 이 안에는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이 다 들어 있어요. 이것은 제자가 제자를 낳는 방식입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식이 정치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어요. 정치 이야기가 막 열기를 내는데 정치가 세상을 바꾸는 한 방식이긴 하지만 전부가 될 수가 없어요. 세상을 바꾸기 위한 이론과 사상과 이념들은 늘 있어 왔어요. 여러분 공산주의 이념이 마찬가지잖아요. 한때는 이 세상에 젊은이들의 피가 끓게 했던 게 이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예요. 그러나 소비에트 연방, 이 소련이 무너지면서 급속하게 동국권 전부 다 허무하게 다 끝이 맞아요. 70년 딱 걸렸어요. 인간이 만든 이념은 아무리 좋아보여도 처절하게 실패한다는 걸 보여줬어요. 지금 중국 공산당이 남아 있긴 하지만 벌써 자본주의 열차를 바꿔 탄 지 오래됐어요. 그냥 형식만 남아 있는 거. 여러분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시도는 늘 역사 속에 있어 왔지만 모두 실패였어요. 우리는 고개를 돌려 주님이 이루신 방식을 보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우리가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는 예수의 제자가 되는 거. 정치인이나 혹은 특별한 지도자가 나타나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에요. 물론 그런 사람들도 필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주님이 보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입니다. 사람들은 제도나 시스템을 바꾸면 될 것이라고 믿죠. 그러나 아닙니다. 사람이 문제입니다. 사람. 아무리 좋은 이론과 체제도 그것을 다루는 인간이 타락한 상태에 있다면 헛된 꿈으로 끝납니다. 인간은 항상 죄의 지배를 받고 있어요. 그 죄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이 힘을 가지면 어떻게 될까요? 그 힘은 오용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변하지 않는데 다른 게 바뀔 리가 없어요. 주님은 한 사람의 변화된 사람을 통하여 이루어 이루실 세상을 바라보신 거예요. 그래서 주님은 12 제자를 택하시고 그들만 남겨 놓고 떠나신 것은 세상적인 관점으로 보면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변화된 제자가 어떤 역사를 이루는가를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60장 22절의 말씀이죠. 유명하죠.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이건 제자도의 얘기를 하는 겁니다. 정말 변화된 한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다.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다.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여러분 아득한 이야기 같지만 이 제자의 원리를 통해서 이루실 하나님의 비전입니다. 인간이 꿈꾸셨던 혁명은 예수님이 꿈꾸셨던 혁명은 인간의 내적인 변화예요. 힘에 의한 혁명은 또 다른 혁명을 가져오기 때문에. 그 분쟁이 끝이 없잖아요, 세상에. 끝없는 권력인 투쟁이 일어납니다. 죄성을 가진 인간이 변화되지 않는 한 세상은 바뀌어지지 않아요.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이 팔레스타인을 바꾸고 나중에는 로마를 바꾸는 역사가 실제적으로 일어납니다. 바울이라는 한 사람의 변화가 유럽의 문명을 바꿔 놓습니다. 저는 몇 년 전에 500 종교 개혁 500주년 독일에 그 현장을 가면서도 마틴 루터의 그 종교 개혁이 유럽에 중세 시대의 역사를 바꿔 놓는 독일에 뭐 역사는 말할 것도 없고요. 여러분 마틴 마틴 루터 킹 한 사람이 변화되었을 때 흑인 노예 해방의 역사를 만들어. 그 한 사람의 변화입니다. 18세기에 영국의 윌리엄 울브 포스라고 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 예수의 제자의 삶을 살면서 의회로 들어갔을 때 그 변화된 한 사람이 그렇게 오랫동안 싸워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이 노예를 사고 파는 그 문화를 올 포스 한 사람에 의해서 변화가 일어나는. 여러분 변화된 한 사람이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헌신하면 조직과 문화가 바뀌어지는 거. 변화된 한 사람이 중요해요. 복음으로 변화된 한 사람의 영향력. 한 사람으로 인해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 어떤 사람은 빠른 방법을 찾죠. 사람을 많이 동원하면 되는 줄 알고 물리적인 힘을 획득하면 변화가 일어날 줄로 생각하는 거죠. 그건 착각입니다. 제도와 시스템으로 발전시키면 더 나아질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아주 막연한 생각이라 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나라의 방식은 그리스도가 이 제자들을 양육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이 방식을 선택하신 것은 복음서를 통해서 우리가 받는 교훈입니다. 주님은 어떤 새로운 방법이 아니라 변화된 사람을 찾으십니다. 예수님보다 더 탁월하고 나은 방법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그건 신기루 같은 것이죠. 그런 길은 없습니다. 모한 구호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주님은 참 선명해요. 나를 따라오라는 거예요. 내가 너희를 작은 목 예수가 되게 하요. 나를 통해서 또 다른 사람이 예수를 믿게 만드는 이 방식. 그 일을 지속할 때 제자가 제자를 낳고 그 제자가 또 다른 제자를 낳고 제자를 낳는 그 방식이 결국은 그 제자가 모두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게 될 때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바꾸는 역사가 있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세상이 바뀌어지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내가 주님을 따르는 참 제자가 되면 되는 거예요. 따른다는 건 여러분 쉬운 일은 아니죠. 대가 지불을 해야 합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따는다면 예수님이 사셨던 방식대로 나도 살아가야 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원수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그럼 나도 그 방식대로 노력해야 되는 거예요.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사셨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겁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용서하셨는가? 그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런 번에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던 그 예수님의 삶을 내 삶의 현장에서 실천해 내는 삶이 제자의 삶이에요. 가정에서 부모가 예수의 제자로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자녀들에게 뭐 그냥 가르쳐서 되는 일이 아니에요. 제자의 삶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체 다는 예수를 오래 믿다 보면 막 그냥 율법주의가 되고요. 그러면 아주 극까지는 냉혹한 그래서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을 반 정죄하고 판단하고 자식들에게도 막 용서가 없고 막. 근데 아무 부모는 열심히 예수 믿는다고 그러는데 아이는 오히려 기독교 과정 교회를 떠나버려요. 떠나버려. 요즘 여러분 기독교 가정에서 기독교를 떠나는 자녀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주님의 용서가 부모를 통하여 확인될 수 없다면 예수에 대한 왜곡된 관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복음이 뭔가 하는 걸 부모를 통하여 경험해요. 그래서 마틴 루터는 자신의 가정을 나의 작은 교구다. 그렇게 표현을 했어요. 가정에서의 목양 자 가정에서의 이 제자도 이걸 놓치지 않았어요. 여러분 주님이 나를 따라오라고 하는 이 말씀은 단순히 교회 출석 정도로만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출석하지만 실제적으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따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질문해 보십시오. 내가 얼마나 변했는가? 누구를 닮았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을 닮아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를 닮아 있습니까? 내가 변했다면 얼마나 변했습니까? 내가 참 예수의 제자가 되어 있는가? 여러분 자신은 제대로 신앙생활을 안 하면서 세상을 바꾸겠다고 투쟁한다면 그것은 우습 일 되는 거죠. 여러분 자본이 우리는 주님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서로 돌아가야 돼요. 주님의 삶과 가르침에서 모든 게 다 들어 있습니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정이 변하기를 원한다면 내가 예수의 제자로 가정에서 살면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변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내가 예수의 참 제자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나를 통하여 예수를 따라가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는 거. 그게 늦은 것 같지만 빠른 길입니다. 가정에서 예수의 제자로 살아 내 자녀들이 예수를 믿는 역사가 일어나는 거. 내가 직장 속에서 참 예수의 제자로 살아 그 직장의 문화가 바뀌는 역사가 일어나는 거. 내 삶에 삶과 성품을 통하여 다른 사람이 예수를 믿고 싶어 궁금해 할 때 그리스도에게로 소개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그가 그리스도를 만나면 그것을 통하여 또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은 이것입니다.
[32:00]정말 바닥을 긁고 빈 그물과 같은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를 이제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도록 우리 모두를 불러 주셨습니다. 이 짧은 인생 가운데 그저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매여 살아가다가 허무한 인생의 결론을 맺는 삶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따라가고.
[32:32]그래서 그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을 바꿀 뿐만 아니라 나를 통하여 또 다른 사람을 예수 믿게 하는 이 하나님의 나라의 변화를 위해서 우리 모두를 불러 주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 가운데 가장 큰 축복이 뭡니까?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거예요. 그분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나를 통하여 또 다른 사람들을 예수 믿게 하고 예수의 제자가 되게 하여 그들을 통하여 또 다른 사람이 예수를 믿게 하는 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난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도래할 줄로 믿습니다.
[33:14]여러분 정말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이지만 다 잊어버리시고 내가 지금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고 있는가를 확인하시며 예수의 참 제자로 살아가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