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은 여러분 뭘까요? 가장 위대한 선물은 무엇보다도 자유라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시고 또 아름다운 에덴 동산에서 모든 것을 누리게 하시는 이 자유. 자유가 없다면 에덴 동산에 그 풍성함은 아무 의미가 없겠죠? 오늘부터 우리의 삶 속에 자유가 없다면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돈이나 우리에게 주어진 어떤 것도 복이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은 역시 자유라고 할 것입니다. 이 자유를 인간에게 허락하신 것은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큰 모험이 될 수가 있는 거죠. 왜 이 자유는 하나님에게 반역할 수도 있고 불순종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를 주셨던 것은 자유가 없다면 인간은 로보트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근데 문제는 이 인간이 이 자유를 남용 오용함으로 인해서 불순종하게 되고 그 불순종의 결과가 자유를 빼앗기는 결과를 갖게 되어졌습니다. 구원이란 뭐냐? 이 빼앗겨 버린 자유를 다시 회복하는 것을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이 구원의 다른 의미는 자유입니다. 인간이 진정으로 누릴 수 있는 자유가 빼앗겼던 그 백성들에게 다시 구원을 되찾게 하는 작업이 구원이다. 어 출애굽기를 우리가 보면 이스라엘 백성 히브리 민족이 이 바로의 애굽의 폭정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가 이제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 가나안으로 이끄시는 이 작업은 정치적 해방의 의미를 히브리 민족에게 있지만 사실은 이것은 구속사적으로 사람들을 구원에 이끌어내는데 이것은 자유로의 회복을 아주 상징적으로 알려 주는 귀한 사건이 바로 출애굽 사건입니다. 노예된 자가 이제 자유인이 되는 것. 어 이 안에는 구원의 드라마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우리를 죄의 종으로부터 마치 이스라엘 히브리 민족이 애굽의 종이 되었던 것처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죄의 종이 되어 있는데 그 죄의 종으로부터 속박에서 풀려나서 자유를 얻게 하는 것.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역은 인간이 죄의 속박으로부터 풀려나게 하는 그런 자유인이 되게 하시는 귀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이 구원을 점점 풍성하게 누린다라고 하는 그 말의 의미는 뭐냐면 점점 우리는 자유가 확보되는 삶을 산다. 우리를 속박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얼매인 것으로부터 풀려나고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주셨던 그 자유의 회복이 구원이라고 한다면 이 구 이 자유를 우리는 어떻게 누릴 수 있는가?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참 이 구절은 너무너무 귀한 말씀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진리를 알면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이 복음이에요, 복음 굿뉴스입니다. 사람들이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요? 참된 진리가 아닌 거짓된 진리에 속으며 살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 오늘 우리 주변에 널려져 있는 잘못된 거짓된 진리가 우리를 얼마나 많이 속이고 있습니까? 그거를 지키기만 하면 돈을 벌기만 하면 성공을 하기만 하면 나에게 자유가 오고 행복이 올 것이라고 하는 거짓된 가르침들에 속으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3:59]여러분 지식을 많이 가지만 정말 우리에게 자유가 올까요? 오히려 여러분 어떤 것을 소유하면 소유할수록 그것에 속박을 당하고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세상의 이론과 거짓된 진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참된 진리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하셨을 때 여기서 진리를 알지니라고 하는 이 알지니가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여기서 진리를 안다라고 하는 이 동사가 아주 중요한 거 이 동사는 히브리어로 야다라는 야다라는 단어입니다. 헬라어로는 기노스코라고 하는 그런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독특한 단어예요. 그냥 안다라는 말이 아니에요. 그래서 창세기 4장 1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4:59]할 때 여기서 하와와 동침하매라고는 이 단어. 이 단어가 야다라는 단어예요. 진리를 알지니라고 할 때 이 안다라고 하는 이 단어가 하와가 아담과 아담이 하와와 동침하매라고는 이 단어가 습니다. 그럼 이 말은 뭐냐면 동침한다라고 하는 이 말의 의미 안에는 뭐가 있습니까? 부부의 깊은 교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얼마나 깊은 관계 속에 있는 거를 말해 주는 거. 그냥 지식으로 아는 것을 말하지 않아요. 제가 이명박 대통령을 아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외 아는 게 문제 저는 이명박 대통령을 너무나도 잘 알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나를 몰라요. 그리고 내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 아는 대통령에 대해서 아는 것은 그냥 그냥 신문에서 보았던 지식이라는 거. 그분과의 교감을 나누고 그분과의 사김을 통해서 깊은 인격적 교재 속에 속에 알아낸 앎이 아니에요. 그게 아무 의미가 없는 거예요, 사실은. 그러므로 오늘 진리를 알 때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한다라고 이 말을 할 때 진리를 안다라고 하는 이 말은 너무나도 중요한 거. 그 진리를 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냐? 첫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깊은 체험을 말하는 거는 체험. 여러분 밥에 대한 이론을 아는 것과 실제로 먹어 본 사람은 달라요. 전기 이론에 대해서 막 공부한 사람과 실제로 그 전기를 만져 감전돼 본 사람하고는 다른 거예요. 이것은 신앙의 세계에서도 큰 갈림길을 만드는 지점이에요. 진리를 안다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성경책을 들고 다닌다라고 하는 얘기 어떤 성경 퀴즈에 답을 할 정도의 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내 안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과정을 말하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말씀을 경험한다는 것은 단순히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내 안에서 강력한 내재화되면서 내 심령과 내 영혼을 바꿔 놓는 위력을 경험하는 걸 말해요. 여러분 이 음식을 먹었을 때도 음식물이 위장으로 들어가 소화가 되고 나중에는 혈관을 통해서 영양소로 온몸에 공급함으로 말미암아 내가 먹었던 그 밥으로 힘이 나잖아요. 이런 이론이 아니잖아요. 그것을 화학적으로 분석해서 기호을 만들고 무슨 논문을 만드는 게 아니라 실제적으로 내가 먹음으로 말미암아 그게 소화가 되고 그것이 영양소가 되어서 우리에게 온몸에 퍼짐으로 내가 힘을 얻게 되는 거 이것은 실제적이고 확실한 거예요. 이건 부인할 수 없는 거란 말이에요. 이게 말씀을 경험한다라고 하는 이 말은 뭘까요? 오늘 또 이 설교를 듣는 가운데 우리 사람 우리 모든 사람들 안에 모두가 동일하게 일어나지 않지만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이 나를 사로잡고 내 영혼의 강력한 일격을 가하면서 내 영혼의 뭔가가 막 일어나는 거예요. 작동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일들을 결정하게 되는데 그 말씀이 정확하게 역사하면서 그 어떤 일을 결정하는데 용기를 주고 뭐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냥 알고 있는 지식은 내 삶을 결정하는데 큰 힘이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어떤 때는 지식이 우리를 더 비겁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머리에 있는 지성과 어떤 정보들이 내 삶을 바꿔 놓는 것이 아니죠. 신앙은 이론의 싸움이 아니라 머리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내 가슴 안에 타고 들면서 가슴을 뜨겁게 만들고 이 뜨거워진 가슴이 머리를 움직이고 내 행동을 움직여 나가게 만드는 이런 역사가 여러분들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 우리가 생각할 것은 진리를 안다는 것은 진리 안에서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리를 안다는 것은 순종하여 순종의 삶으로 나타나는 거죠.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일어나는 첫 번째 반응은 불편함과 거부감이에요. 아마 여러분 처음 교회에 나오신 분들은 잘 아실 거예요. 처음에 교회 와서 말씀을 들을 때 아, 저 말대로 살면 망하는데 그런 생각이 들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과 내 삶의 현실이 맞지 않는 생각이 든다고요. 말씀대로 살면 망할 것 같은 얘기가 참 많아요, 사실은. 그래서 교회를 꽤 오래 다닌 분들도 이제 적당하게 타협을 하고 아 말씀대로 다 목사님 말씀대로 다 적용하면 망해. 그래서 적당한 선을 긋고 순종할 거는 순종하고 내가 또 내 나름대로 살아갈 거는 살아가고 요렇게 아주 정리가 잘 돼 계신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여러분 말씀을 말씀대로 받기를 바랍니다. 말씀은 진리예요, 여러분.
[9:56]진리는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환경은 변화 무쌍하지만 하나님의 진리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요. 변함이 없는 말씀이기 때문에 변함이 없는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 진리라고 말하는 거예요. 변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에요.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게 진리라는 거죠. 여러분 수학 문제를 풀 때 잘 안 풀리면 공식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근데 안 풀린다고 공식을 바꾸면 됩니까? 그건 큰일나는 것입니다. 진리를 우리가 붙잡아야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운전을 할 때 교통 법규를 지키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한두 번 어긴다고 사고 나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그게 쌓이면 반드시 사고로 가게 돼 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처음에는 불편하죠. 당연하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말씀대로 살아야 우리에게 자유함이 오고 평안히 찾아오고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상황과 맞지 않는다 할지라도 내 감정과 내 본성과는 아주 일치가 일어 일어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그런 마음이고 우리가 진리에 우리의 삶에 기준을 맞추고 순종해야 자유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자유는 내가 당장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기보다 하나님 말씀에 더 우선을 두는 삶을 말합니다. 나는 하기 싫지만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에 내 삶을 걸어보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의 삶의 기준은 오직 진리여야 합니다. 절대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 때로는 불편하게 여겨지지만 내 본성과 반하지만 일시적으로는 힘들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적극적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자유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 반대 정신으로 자꾸 사는 노력을 해야 돼요. 내 본성과 반대되는 삶을 살아. 세 번째 우리가 생각할 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한 분에게 매이는 삶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한 분에게만 포로가 되면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고 진정한 자유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36절에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니라. 바울 사도는 언제나 자신에 대해서 이런 평가를 자기를 그렇게 소개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종된 바울이다. 나 바울. 여러분 그 시대 속에 종이라고 하는 단어는 굉장히 편화하는 아주 멸시하는 단어였어요. 근데 바울은 계속 자기를 평가할 표현할 때 그리스도의 종 된 나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 된 나 바울은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그리스도 안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고 그는 기꺼이 자기의 이름 앞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여요. 그래서 그의 서신을 보면 끊임없이 무슨 말이 자주 나오느냐면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 바울 서신을 읽어보면 얼마나 이 이 단어를 많이 쓰는지 몰라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in Christ, in Christ, in Christ, in Christ, in Christ. 이거는 헬라입니다. in Christ.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 강조하는 이유가 뭡니까?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가 만족을 누리고 그래서 죄인 중에 죄수다. 나는 만삭되지 못하여 남자와 같다. 마치 들떨어진 아이와 같다. 뭐 이런 표현들을 막 하는 이유가 뭘까요,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과거의 수치를 드러내는 이유는 자기의 연약함을 자랑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자기는 이제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의 평가와 다른 사람의 비난과 다른 사람의 칭찬에 연연하지 않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의 존재를 확인하는 이 진리를 그가 발견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을 왜 우리가 자유롭게 살지 못하게 만듭니까? 우리를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일들이 왜 많습니까? 우리 안에 뭔가 두려움이 있는 거예요. 어떤 사람들에게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다른 사람이 어떤 평가에 굉장히 예민해져 있어요. 좀 더 인정을 받기 위해서 뭔가로 쌓아가면서 내 존재를 드러내고 돋보이기 위해서 그래서 어떤 사람은 명함을 보면 막 명함이 막 굉장히 복잡해요. 앞에 모자라가 뒤에도 써놨어. 굉장히 불안한 거예요, 불안한 거. 존재의 불안함이 있는 거. 자신 안에 어떤 두려움이 있는 것이죠. 자신 안에 뭔가 노예적 묶여 있는 삶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의 이 바울에게서 발견한 것은 뭡니까?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로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로서 그 안에 자유를 얻는 그 안에서 나의 나 됨을 평가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에게 온전히 매이게 되면 우리의 영의 자유가 찾아오는 거죠. 다른 사람의 평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느냐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거죠. 비교에서 내 삶이 날마다 열등감과 우월감 속에 왔다갔다하는 그런 삶을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애를 쓸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이죠.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서 당당함과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함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그런 만족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그리스도 안에 속할 때 그리스도에게 매인 자가 될 때. 여러분 우리 안에 육체의 소유기 얼마나 날마다 일어나고 있습니까? 어떻게 이길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우리가 죄와 싸워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어떤 사람은 뭐, 예, 술을 좋아하면서 내, 술집 앞에서 이기게 하옵소서. 그러다가 들어가고 말이죠. 술병 막 흔들면서 마시지 않게 하옵소서. 그러다가 마시어 버리고 말이죠. 여러분 죄에 빠지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됩니까? 안 됩니다. 죄와 직접적으로 싸워서 지게 돼 있어요, 여러분. 죄에 매인, 죄성을 갖고 있는 본성을 갖고 있는 인간이 그 죄의 문제를, 죄에 둘러 싸여서 죄를 이기게 해달라고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죄에 이길 수가 없어요. 길은 어디에 있느냐? 우리의 관심을 그리스도에게로 돌리고 그리스도에게 매인 자가 되고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 자가 되면 자연스럽게 이기게 되는 거예요. 아멘. 여러분 요한복음 15장에 포도나무와 가지와 비유가 있잖아요. 예수님은 포도나무에 우리를 가지라고 했어요. 아멘. 정말 요한복음 15장 이 이 말씀 주님의 비유는 너무너무 귀 귀한 교훈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16:54]우리가 할 일은 딱 하나밖에 없어요. 가지가 할 일은 딱 하나밖에 없어요.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거예요. 그러면 삽니다. 오늘 여러분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아가기를 힘쓰고 신앙생활에 애를 쓰는 이유가 뭘까요?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 작업. 그래서 날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로서 자신을 확인하고 그리스도에게서 흘러나오는 영적 에너지를 우리가 받기만 한다면 저절로 어느 순간 나를 둘러싸고 있는 죄의 세력은 떠나가 버리고 만 것이죠. 죄 속에서 내가 아무리 몸부림 쳐도 소용이 없어요.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이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서를 보면 이런 말을 하죠. 그가 그동안 그렇게 추구했던 모든 것들을 세상 사람들이 침을 흘릴 만한 그런 매력적인 그런 것들을 바울은 일평생 쌓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어요. 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여기는 이유를 그 다음에 말씀하고 있는 그게 뭐냐면 배설물로 여기는 것은 그리스도를 얻고라는 표현을 쓰고 있어요. 아멘. 그리스도를 얻은 자만이 그런 것들을 배설물로 여길 수가 있어요. 그 모든 자기를 오늘 세상의 사람들을 속박하고 있는 그거를 얻어내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바울은 자유를 얻는데 그 자유를 얻던 이유가 뭐냐? 그리스도를 얻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만족을 누기 때문에 아멘. 여러분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진정한 만족을 주시는 분이세요. 그분은 충만한 하신 분이세요.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는 고백이 우리에게 나올 수 있는 분이세요. 후회가 없어요, 여러분. 그리스도를 얻고 나면 모든 내가 웅켜지고 있는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은혜가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어요. 신앙생활을 한 발만 이렇게 더 걸치고 뺐다 말듯 엉거주춤 대충 신앙생활 하면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에요. 요즘 저는 보니까 이 세상에 말이죠. 막까요, 막까. 이 신문이나 이런 이 언론을 보십시오. 야 어쩜 이런 일이 일어나냐. 그런 일들이 얼마나 많아요, 여러분. 어떻게 이런 일이 뭐 뭐 뭐 TV도 그런 프로도 있는 거 같아요. 이를 수가 뭐 하여튼 세상이 어찌 이런 일이 뭐 그런 거 비슷한 거 하나 있죠? 별일이 다 있는 걸가 하는데 안 좋은 별일이 많은 거예요. 기가 막힌 일들이 있어요. 이 세상에 이 지금 마지막 때라는 걸 보여주는 거 같아요. 근데 여러분 어제도 뭐, 예 뭐 아이고 말도 하기 싫다. 지금
[20:17]여러분 그런 이 이 별 것들을 다 보면서 그게 여러분 남의 얘기가 아니에요, 여러분. 결함이 있는 인간의 모습이에요. 멀리 있는 얘기가 아니라는 거죠. 누구 모든 사람들의 죄인 된 인간의 본성 안에 있는 욕망의 그 깊은 그 뿌리 깊은 그 죄의 작동들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은밀한 욕망의 문제는 우리를 부자연스럽게 하고 언제 어디서 무슨 사건이 일어날지 모르는 별 일이다. 요즘 뭐 교회 안에서도 별일이 다 일어나요. 성도 여러분 바울은요 이런 표현을 씁니다.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아 대단한 얘기를 했어요. 바울이 누굽니까, 여러분? 일평생 복음을 위해서 당신의 생명을 바친 사람입니다. 진짜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복음만을 위해서 진짜 수만 킬로를 일평생 아시아와 지중의 연안을 생명을 걸고 다녔던 사람인데 이 표현을 쓰고 있는 거예요.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 안에 찾아오는 수 없는 욕망과 내 안에 있는 모든 죄성과 내 안에 찾아오는 더럽고 거짓된 것들로부터 나를 지켜내기 위해서 나는 날마다 나를 쳐 복종한다. 나를 날마다 컨트롤하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는 이 복싱 용어잖아요. 여러분,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고 복싱 용어예요. 상대방을 코너에 몰아서 완전히 K.O.패를 시키는 거 누구를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죄와 싸워서 승리하는 것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바울에게도 있었다는 거죠. 장사 없어요, 여러분.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즘 자유를 잃어버린 자유인들이 너무도 많아요. 노예적 삶을 살아가는 비참한 사람들의 모습을 우리가 바라보고 있습니다. 여러분 나를 속박하고 있는 것이 어떤 것입니까? 무엇이 나를 사로잡고 끌고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것에 자유를 잃어버리고 피곤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출처를 알고 알 수 없는 거짓된 진리에 더 이상 속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의 본성과 욕망을 그대로 두면 이거는 그냥 막 날 야생마처럼 날뛰게 돼 있어요. 그러므로 여러분 진리를 단순히 머리로만 아니라 온몸으로 경험하는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내 마음에 이끌리는 대로 살 것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내 감정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내 본능은 그것을 거부한다 할지라도 말씀의 기준에 전적으로 순종하면 반드시 자유가 올 것입니다. 아멘. 하고 싶지만 하지 않을 자유를 훈련해야 합니다. 저는 오늘 이 시대가 하고 싶지만 하지 않을 자유를 무한히 모든 것이 열려 있는 너무도 풍요로운 너무도 자유가 넘쳐나는 이 시대 속에 우리가 훈련해야 하는 것은 해 할 수도 있지만 하지 않을 자유를 선택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멘. 여러분 이것은 훈련을 해야 돼요. 끊임없이 훈련해야 돼요. 셀프 컨트롤을 해야 됩니다. 감정이나 본능을 따라 행동하면 안 되는 거는 망하는 거예요. 망하는 거.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삶을 살 때 자유가 온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하고 그 선택은 내가 하는 겁니다. 그 선택은 내가 하는 겁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적극적으로 그리스도에게 이끌리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에게 빠지시기를 바랍니다. 그 안에서 만족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 안에 모든 것이 들어 있어요.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게 들어 있어요.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 자가 되어야 돼요.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그리스도를 묵상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애를 쓰며 살아가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자유를 주세요.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자유 안에서 구원의 풍성함을 날마다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