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mbnail for | 다시보는 BEST 설교 | 낮은 곳에 임하신 예수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빌리보서 2:6~11 | by CTS BEST 설교

| 다시보는 BEST 설교 | 낮은 곳에 임하신 예수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빌리보서 2:6~11 |

CTS BEST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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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어 오늘날 우리가 어디를 가나 갈등과 분쟁이 있어요. 갈등과 분쟁이 다툼이 없는 곳이 없어요. 사랑한다고 죽고 못 사는 사람이 만나서 사는데도 갈등과 분쟁이 일어나서 사니 안 사니 그러고 예 오늘 지구촌 곳곳에 어디를 가나 갈등과 다툼과 분쟁이 끊임없어요. 911 테러 이후에 온 세계는 얼마나 긴장 속에 우리의 세계가 있습니까? 비행기를 탈 때마다 뭐 그렇게 불쾌하게 그냥 검색하고 이게 뭐 다 긴장 오늘 이 세계가 대립 구도에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휴전 상태입니다. 전쟁이 쉬고 있는 거죠. 그래서 우리 휴전선 근처에 가면 긴장감이 돕니다. 여전히 총 부리를 서로 대고 있는 이 지구촌의 유일한 분단 국가 긴장감이 돌고 있어요. 최근에는 북한에 일어난 일들로 인하여 한반도에 과연 더 갈등이 깊어질 것인지 아니면 이 땅 가운데 진정한 평화와 화해의 무드가 진행될 것인지 온 세계가 주목을 하고 있습니다. 국내적으로 안으로 돌아가 보면 우리 남한에도 국내적으로 돌아가 보면 좌우에 이 이념의 대립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날카롭게 날이 서서 대립 구도로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 국가적 사회적 문제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 가정에 OECD 국가 중에 한국은 이혼율 1위요 자살율 1위를 오랫동안 지켜 왔습니다. 겉으로 보면 그냥 돌아가는 거 같아 보이지만 조금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모든 곳에 갈등과 대립과 분쟁과 다툼이 끊임없이 이 땅을 어 지배하고 있습니다. 오늘 교회 안에도 분쟁과 갈등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수영로교회 다니시는 분들 그거 잘 모르시죠? 얼마나 많은 교회들 안에 분쟁과 갈등과 대립과 소송으로 교인들 간에도 힘겨운 싸움을 하는 경우들이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 빌립보 교회에도 그런 배경 속에서 바울이 그런 대립과 갈등 속에 있는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주는 메시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2000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을 때도 유대 나라는 갈등과 긴장 속에 있었습니다. 특별히 로마의 속국으로 있으면서 정치적으로 굉장히 불안한 환경 속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굉장히 어두운 암흑기 그 종교는 기능을 상실해 버린 그런 어두운 시대. 그래서 정말 국가적인 어려움 속에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가 2000년 전에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평소에 평화를 갈망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의 역사를 연구하면 반드시 전쟁사를 연구해야 될 정도로 이스라엘은 전쟁 속에 살아왔던 나라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인사는 언제나 샬롬이었어요. 그들이 희망하는 주제는 평화가 오기를 원한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샬롬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사라고 하는 그 안에서 그들이 얼마나 평화를 갈망했는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땅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평화의 왕으로 오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 14절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그 중요한 두 가지의 키워드가 있는데 하늘에서는 영광이요 이 땅에서는 평화라고 하는 하늘의 하나님의 영광이 선포되고 이 땅에 평화가 임하게 되는 것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이 땅에 가장 절실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딱 하나예요, 평화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이 그 평화를 위하여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 평화를 우리는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이 땅에 오셨는가를 우리가 살펴보면 어떻게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를 해답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십니까?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6절 이후에 보니까 그는 그 근본 하나님의 본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시지만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죽기까지 자기를 복종하시면서 낮아지신 그리스도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빌립보서 2장에 말씀하는 것들 속에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라는 거요. 하나님이시라는 말은 뭘까요? 그분은 창조주이십니다. 그분은 홀로 영원히 영광 중에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절대 지존자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이 사람이 되셨다는 거요. 그냥 사람이 되신 것이 아니고 종의 형체를 가지고 오셨다는 거요. 종의 형체로 끝난 것이 아니고 죽기까지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기를 복종하시며 낮추신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겸손이 무엇인가를 가장 잘 정의하고 있는 성경의 내용 가운데 하나가 오늘 빌립보서 2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겸손이 뭐냐? 바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신 분이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되시고 종이 되시고 십자가까지 낮아지시고 죽어 주신 그것이 겸손이라 그래요. 여러분 우리는 겸손하면 뭐 악수할 때 고개 약간 숙이는 걸 겸손이라고 생각해요. 뭐 조금 자리 양보하는 것 정도를 겸손이라고 생각해요. 뭐 전 칭 좀 쓰면 그게 뭐 이렇게 겸손을 얘기하는 거 같아 보이지만 그건 겸손이 아니에요, 어떤 면에서. 여러분 오늘 그리스도의 자기 비하는 그 낮아짐에 그 끝자리를 볼 수가 없을 정도로 낮아지신 거예요. 창조주가 피조물이 되셨다는 거요. 여러분 이것은 우리의 인간의 이성과 경험의 세계를 훨씬 더 뛰어넘은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사실 우리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여러분. 우리는 과장으로 있다가 계장만 좌천이 돼도 그냥 밤잠 못 자잖아요, 여러분. 그렇죠? 예. 동장이 반장으로 못 사는 거예요, 여러분, 그런. 여러분 사람이 바퀴벌레가 된다. 그건 피조물이 피조물 되는 거예요, 어떤 면에서. 피조물이에요, 피조물 전부 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 그건 창조주가 피조물 된대요. 이거는 상상할 수 없는 추락이에요. 여러분 이것을 누가 이해할 수가 있겠어요, 여기 그 정도의 낮아짐을. 여러분 파격이죠, 파격. 사실 이 인카네이션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라고는 이 인카네이션이라고 하는 것은 이 복음의 진수 가운데 핵심 분야에 들어 있는 논증이에요, 논증이에요.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 그래서 이건 베스트셀러 작가인 필립 얀시가 그 그리스도가 인간이 되셨다라고 하는 이 부분을 그는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만물을 만드신 그분께서는 작아지고 작아지고 작아져서 마침내는 하나님의 하나의 난세포가 되기까지 작아지는 형태로 오셨다. 육안으로는 식별이 불가능한 수정난 태아가 형성되기까지 세포 분열을 계속해 마침내는 불안했던 10대의 소녀의 태중에서 커져갈 난세포로 이 세상에 오셨다. 그냥 사람으로 오신 거 아니잖아요. 성인으로 완성된 그래서 빰맨하고 나타난 게 아니잖아요. 아주 한 세포 단세포로 수정난 우리의 육안으로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지극히 작은 모습으로 하나님이신 그분이 이 세상 가운데 오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을 존돈이라고 하는 사람 시인의 글을 인용하면서 그대의 존귀한 태중에 광대한 존재가 은둔에 있나니 여러분 참 신비로운 것이죠. 이 낮아지심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놀라운 평화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우리가 평화의 삶을 원한다면 답은 딱 하나입니다. 딱 하나예요, 내가 낮아지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3절에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용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낮게 여기고 그랬어요. 낮게 여기고가 아니고 지오이 아니고 시오이라는 것을 잘 아시기를 바랍니다. 낮게 여기라는 거예요. 낮게 여기지 말고. 갈등이 이러기 시작하면 내가 낮아지라는 신호예요. 나의 내면에 불편함의 출처가 무엇인가를 점검해 보면 틀림없이 곳에는 높아진 마음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 부부끼리도 마찬가지예요. 누가 그냥 그냥 높아진 마음이 한쪽이라도 있으면 서로 안에 갈등이라고 불편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낮아졌다고 생각하는데도 여전히 내 안에 갈등이 있고 분노가 있다면 원인은 하나예요. 더 낮아지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더 낮아져야 되나요? 우리의 기준은 그리스도 있어요. 그리스도가 낮아진만큼 우리가 낮아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뭘까요? 그냥 겸냥을 떠는 게 아니라 십자가에 죽기까지 죽는 경험을 하는 거요. 여러분 상대의 교만이 내 눈에 보이면 내가 안 죽은 거예요. 많은 사람들도 그래요. 목사님 난 겸손하려고 애썼거든요. 근데 저 인간이요 고개를 빤빤히 세우니까 내가 못 견디겠어요, 그러더라고요.

[11:10]이유는 뭐예요? 내가 안 죽은 거예요. 내가 내 자아의 죽음이 일어나지 않은 거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조금 낮추어 놓고 생생만 내는 것입니다. 여러분 완전히 죽음을 경험해야 합니다. 낮아지심의 정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예요. 나가 낮아짐의 그 끝치가 십자가에서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근데 이 낮아진다는 것 십자가를 어 통과한다는 거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여러분 십자가라는 그 말에는 고통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잖아요,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 지셨다고 그러니까 우리는 오랜 세월이 지나니까 그냥 교리적으로 이해하고 예수님 십자가 지셨네 그러지만 사실 예수님마저도 그 십자가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거잖아요. 그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 십자가를 앞두고 몸집하신 이유가 뭐예요? 그 십자가가 너무 큰 고통이니까 그 온 인류의 진노의 그 진노를 혼자 받아야 되는 그 고통의 시점에 육체적인 고통도 육체적인 고통이지만 온 인류의 죄의 쓰레기를 혼자 뒤집어 써야 되는 그 정신적 고통과 압박은 말로도 할 수 없는 거요. 죄가 하나도 없으신 그분이 죄인과 같이 되신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에요, 여러분. 모욕과 수치와 그런 냉대를 받으시는 그 단계까지 나아가는 것은 고통이에요, 여러분. 십자가는 고통이에요. 여러분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내가 조금이라도 낮아지려고 해 보세요. 얼마나 그게 힘든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십자가의 고통은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부활의 역사로 다시 높여 주시는 역사로 바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낮아질 때는 내 존재가 영원히 끝나는 거 같고 낮아질 때는 내가 영원히 무시를 당하는 거 같고 낮아질 때는 내가 바보 취급 당하는 거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죽어진 자에게 부활의 놀라운 역사를 허락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멘. 이 놀라운 은혜를 한번 맛본 사람들은 죽어짐의 경험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13:17]여러분 낮아짐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13:25]이 성탄절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귀한 메시지가 뭘까요? 여러분 하늘 보좌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겸손하게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기를 낮추셨던 그 주님이 어떻게 되셨어요, 여러분?

[14:38]오늘 9절 이후 보십시오. 이러므로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 기가 막힌 거요.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지극히 높이셨어요. 그래서 여러분 9절에 이러므로라는 말은 낮아진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자기를 낮추신 그를 지극히 높이셨다. 지극히 높이셨다. 여러분 사람들은 자기가 낮아지려고 할 때 두려움이 와요. 나는 없어진다고 생각해요. 내가 바보 취급 받는다고 생각해요. 내가 낮아지면 사람들이 나를 무시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여러분 두려워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께서 높아지신 것처럼 여러분 마음 놓고 낮아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이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이 책임을 주시면 아무도 낮출 수가 없어요, 여러분. 내가 높아지려고 한다고 높아지는 게 아니고 높고 낮게 하시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있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오늘 그리스도의 이 모습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낮아진 자만이 높임을 받을 수가 있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여러분 십자가를 통과한 사람들은 부활의 영광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가 무시를 당하고 억울함을 당하고 사람들이 비난을 하고 나를 낮춘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내가 언제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돌을 붙잡고 낮아진 자의 삶의 모습을 유지하면 하나님이 내 삶을 가장 영광스럽게 세워 주실 것이라는 이 믿음을 갖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안 죽어요, 여러분. 내가 죽으면 주님이 다시 살리시어요. 내가 안 죽으려고 하니까 그냥 진짜 죽지. 그냥 혼자 죽으면 돼요, 여러분. 그래서 여러분 손해를 당할 일 있으면 손해 당하세요. 누가 누가 나를 핍박하면 그냥 핍박을 당하세요. 오른밤을 치거든 왼밤을 돌려대세요. 이 무정 항주의 이 간디나 이런 사람들은 이 무저항주의가 다 성경에서 나왔잖아요, 팔복에서요. 그냥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 거예요. 내가 피해를 입으면 피해를 입은 자로 그냥 있는 거예요. 뭐 이 일을 띄고 막 투쟁하고 그러지 않아요. 뭐 어떤 교회는 뭐 자기 교회에 대해서 뭐 뭐 방송에 뭐 폄하했다 그러니깐 뭐 교인들이 그냥 방송국에 가 가지고 데모하고 그랬는데 그건 기독교의 본래의 정신이 아니에요, 여러분. 그냥 뭐 욕하면 욕을 얻어 먹는 거지. 막 피켓을 들고 투쟁하고 그 기독교의 모습이 아니에요, 여러분. 우리는 강자의 논리로 세상과 싸우지 않아요. 우리는 바보처럼 당하는 자로 서 있는 거예요. 그 모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이 끊임없이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사울의 손을 대지 않잖아요.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의 손으로 심판하지 않잖아요. 심판의 칼은 하나님의 손에만 맡겨 돼 있어요. 인간이 지면 자기가 다쳐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거예요. 할렐루야. 그러면 우리가 할 일은 뭐예요? 그냥 당하고 손해 보고 모욕을 당하고 침을 뱉으면 침 뱉음을 당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모욕과 침 뱉음과 조롱을 당하셨잖아요. 그 어떤 분은 그러더라고 침 뱉으면 그 사람 앞에서 딱지 말라. 그 사람 기분 나빠 하니까. 오묘하도다. 이 기독교 아니면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 얘기겠어요. 여러분 이 세상 속에 살아가게 될 때 오늘 로마서 12장 17절 17절 이후에 보니까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여러분 이 패러독스 이 역설의 진리 이 세상의 원리와 방식과 방식을 따르지 않고 우리는 전혀 다른 삶 원수와 함께 맞대응하지 않고 오히려 원수가 주리며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는 거요. 우리는 악을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거요. 선을 악으로 이기라는 거요. 여러분 우리 삶의 모든 일에 할 수 있거든 너희는 모든 사람과 화목하라. 원수를 만들지 말라. 어떤 경우에도 강자의 논리로 서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작은 자 약한 자의 모습으로 스스로 내려앉게 될 때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가장 존귀케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이지 우리의 힘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아요. 여러분들의 가족 관계 안에서도 남편이든 아내든 부모의 입장이든 누구의 입장이든 우리는 강자의 논리가 나 내 힘을 가지고 다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연약한 자의 모습으로 서 있을 때 오늘 우리 가정 안에 화목이 일어나고 변화가 일어나고 놀라운 화평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평화가 여러분들의 삶 속에 일어나게 되기를 바라고 이 한 해가 가기 전에 한 해를 살아오면서 여러분들의 관계들 속에 묶히고 얽히고 그리고 갈등 관계 속에 있는 여러분들의 인간 관계가 있다면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이 낮아지심의 정신을 실천하므로 모든 관계 안에 화해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주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3:36]그리고 여러분들의 삶 속에 평화의 역사가 일어나고 평화의 사도로 살아가는 축복이 있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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